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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파파와 바다 ㅣ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7
토베 얀손 지음, 허서윤.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508/pimg_7338931712190363.jpg)
무민파파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회고록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무민파파의 모험심이 기어이 저 넓은 바다 위 등대 섬으로 현실감 있게 발휘되었다. 골짜기 생활에서 더 이상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없었던 무민파파의 인솔하에 늦여름밤, 무민 가족은 등대가 있는 섬으로 떠났다. 모든게 완벽했던 무민골짜기를 뒤로 하고…
p.10 .무민 가족은 늘 뭔가를 했다. 묵묵히, 쉬지도 지루해하지도 않고 세상을 이루는 작디작은 일을 끊임없이 해 나갔다. 늘 정해진 대로 반복된 생활을 하며 모든 것을 혼자 마음 속에 품고 있어서, 무민 가족의 세상에 더할 나위라고는 없었다. 마치 탐험이 모두 끝나 마을이 빼곡히 들어선, 미개척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세계지도와도 같았다.
무민파파의 모험담을 읽을 때와는 달랐다. 현실이 된 무민파파의 모험은 쉽게 이해할 수도 감동할수도 없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무민 골짜기를 떠나온 이 가족에게 잔소리를 퍼부어주고 싶은 기분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놔두고 미지의 모험을 쫒아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엔 견뎌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않느냐고 다시 돌아가는게 어떠냐고 마음속으로 수십번도 더 외쳤다. 등댓불은 꺼져 있고, 등대는 잠겨있고, 먹을 것은 떨어져가고, 무민마마가 정원을 가꿀만한 흙 한줌 안보인다. 게다가 유일한 이웃인 어부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상황이 어찌 됐든 무민가족은 처한 현실을 바꿔보려고 고군분투한다. 무민파파는 등대 열쇠를 찾았고, 무민마마는 등대 근처에 정원을 꾸밀 꿈을 꾸게 됐다. 무민은 근사한 빈터와 아름다운 해마들을 발견해냈고 미이는 어부를 관찰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물론 희망적인 이야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등댓불은 고쳐지지 않고, 정원을 꾸미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민마마와 무민파파가 어떻게든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동안, 무민은 홀로 비웃는 해마들과, 다가오는 그로크를 상대로 두려움을 견뎌내야 했다. 이 살아 움직이는 섬은 무민가족에게 전혀 우호적이지가 않다.
p.68
무민파파가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그런 건 자세히 알려줄 수 없지. 세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들에게는 엄청나게 놀라운 일들로 가득하단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새하얀 갈매기가 나한테 열쇠를 물어다 줬을지도 모르지…."
무민 가족이 겪는 역경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지만 이것이 무민가족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이 결말은 해피엔딩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무민과 그로크, 무민파파와 어부, 무민 가족과 섬, 결국 많은 것들이 서로 화해하게 되니까. 앞으로 섬에 남든, 골짜기로 돌아가든, 낯선 환경을 겪으며 조금은 변하고, 조금은 달라진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늘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무민마마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무민은 독립했다. 그 행로가 우리의 삶과도 너무나 닮아 있어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삶에도 똑같은 선택의 순간이 오면 무민 가족처럼 안정보다 값진 모험을 선택할 수 있을까?
p.163
가족들은 무민마마가 톱질하는 모습에, 장작더미가 쌓일수록 점점 가려지는 무민마마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처음에 무민파파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장작더미를 넘겨받으려 했다. 그러자 무민마마도 화내며 말했다.
“이건 내일이예요. 나도 좀 놀아 보자고요”
마침내 장작더미가 너무 높아진 탓에 무민마마는 귀 끄트머리만 간신히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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