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인간 -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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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은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평가, 미학자로 신학적이며 철학적인 독특한 문체로 전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는 학자 중에 한명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 하이데거의 사유(세계-내-존재, 현사실성, 현존재, 두려움 등)들을 언급하며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이끌어 낸다. 부제목인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1년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얼굴 없는 인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철학적 의제는 아래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메시지만 오가고, 가능한 한 기계가 인간 사이의 모든 접촉, ‘모든 전염’ 가능성을 대체해 버렸다.” <얼굴 없는 인간> p42

결국 접촉의 상실은 잠재적인 바이러스 전파자로써 관계의 분열을 초래하고, 이는 바이러스가 나라의 정치적인 도구로써 선동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점철 된다. 이 두가지의 차원을 아감벤은 염려하면서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의 물음에는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자유, 정치의 범위 등이 요청된다.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방역을 어긴 이들에게 어떠한 법적 조치가 이뤄져야 할까? 이는 사회 시스템하고도 결부되어 있다. 그는 현 시대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결합 된 형태로 인간의 존엄성을 마음만 먹으면 박탈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본이라는 경쟁이 형성하는 인간의 얼굴이란 건 표정 없는 기계화 된 얼굴처럼 보인다. 키케로의 말과 같이 인간의 얼굴은 성격을 표상한다. 그러나 이제 마스크가 잠식해버린 인간의 표정은 부속품에 불과하다. 무의식적으로 발화하는 표정을 포착할 수 없게 된 인간은 소통의 절멸을 경험한다. 

“공동체의 즉각적이고 세밀한 지침을 따라 직접적인 메시지만 교환할 수 있다. 더 이상 얼굴 없는 이름으로” <얼굴 없는 인간> p148

그러나 나에겐 의문이 든다. 아감벤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얼마나 광범위한 구술로써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위’의 가치의 무게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구체적으로 논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아감벤은 ‘인문학자’이지 과학자, 의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통계와 사례들은 축적되어 가고 있으며, 각 나라마다 코로나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를 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상황을 고찰하게 되면 아감벤의 글들은 그렇게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가 자신이 바이러스학자도, 의사도 아니며, 윤리적, 정치적 변화에 대한 관심만을 내비쳤지만, 안타깝게도 아감벤의 <얼굴 없는 인간>은 나에겐 인간의 존엄만을 위시한 공허한 외침으로 읽혀졌다. 아무래도 그가 코로나로 인해 범국가적인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단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된 사회적·정치적·문화적인 결핍을 아감벤의 사유의 틀 안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그러한 것 같다. <얼굴 없는 인간>을 통해 아감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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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이 되어 줄게 - 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해 주지 못했던 말
한기호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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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이 되어줄게는 한기호 작가님의 자전적 성격을 지닌 에세이로 자신의 딸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어서 출판 된 책이다. 출판 평론가로 살아온 지난 생활을 돌아보면서 그간 책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을 책의 대상자인 아이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들에게도 따뜻한 격려와 위로, 한편으로는 날카롭지만 사려 깊은 태도로 삶을 조언하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지시해 준다. <네 편이 되어줄게>라는 책 제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난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가족주의적 편향에서 벗어나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방법과 세상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어떠한 지를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기호 작가님이 출판 평론가이기 이전에 책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쇄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대한 관심 혹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세계는 하나의 도서관 혹은 한 권의 거대한 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 책의 세계화를 진작부터 보르헤스는 예견 했다. 이제는 책이 번역되는 속도도 이전보다 가속화 되고, 다양성이 확대되어 한국의 문학들이 해외 저명한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책은 시대를 불문하고 세계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것은 한 개인과 공동체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의 매개체이다. 우리가 탐색할 수 없던 사유의 깊이를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에 대한 생각을 대변 하듯 <네 편이 되어 줄게>에서는 아주 열렬하게 책읽기의 중요성, 점차 변화 되는 세계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미래 사회의 발전 가능성과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세계화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구촌 경제 체제, 즉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와 자유가 주어지는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다고 했어‘ p25

‘앞으로 인간은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하렴.’ p87

‘주어진 정보를 엮고 해석하여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능력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책을 읽으며 함께 토론하고 상상하는 능력을 키운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단다. 할아버지가 늘 강조하는 얘기지.’ p175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떠오른 생각은 아버지란 무엇일까라는 점이었다. 한기호 작가님이 자신을 삶을 회고하면서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반성하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것,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 엄마, 아빠가 된다는 첫 번째 경험은 누구에게나 어색한 것이다. 작가님의 딸이 자녀를 갖게 된 계기를 통해 ‘아버지’가 바뀌었다고 서두에 말한다.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한가지 물음을 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를 바꾼건 책이 아니라 세상에 입성한 선물과도 같은 손주였다. 생명은 사람의 삶을 바꾼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진리'를 배웠다. 그것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책에서 나는 ‘책’을 읽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네 편이 되어줄게”라는 창조주가 나에게 선언하는 신탁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 편이 되어 줄게>는 세상의 어려움에 도망가지 않고 이겨내는 방법을 말해준다. 나는 책을 통해 좋은 아버지, 좋은 할아버지, 그것도 아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다짐과 함께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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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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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의 간극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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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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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텍스트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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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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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를 집필한 요시야 노부코는 남존여비 사상을 답습했던 어머니와 다툼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하듯 현모양처를 육성하는 교육 방식을 고수했고,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말은 다름 아닌 사상가 니토베 이나조의 말이었다. 

"현모양처가 되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완성이 중요하다"

요시야 노부코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아 문학 작품들을 탐독하며 자신의 글을 써 내려 가기 시작한다. 물망초는 그녀의 소설 중에서 그녀의 삶을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 고등학교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3명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서두에 이를 <세 유형>으로 구별 짓는데, 이는 소설에서 주요한 특징점이라 할 수 있다. 아이바 요코는 립스틱과 콤팩트를 바르며 트랜드에 민감하고 크라이슬러 자가용을 타는 공주님의 전형처럼 매력을 뿜어내고, 사에키 가즈에는 학급에서 제일 가는 모범생으로 공부만 열중한다고 해서 로봇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유게 마키코는 개인주의자로 말이 없지만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요코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 유형은 소설의 입체적인 에너지를 부여하고, 우화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물망초의 꽃말처럼 진실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점들이 인상적이다.

특별히 미사코의 가정을 묘사 할 때 요시야 노부코의 삶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키코의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신념을 고수하는 아버지의 다툼은 그 시대에 탈피할 수 없었던 한계에 부딪히는 한 소녀의 용기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상고하게 된다. 또한 소설은 근대적인 여성관을 넘어 현대의 여성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혹은 시대적 변화에 대한 요청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의 옷을 입고 있고, ‘여성’은 선입견과 투쟁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코는 마키코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이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상 동성애적 코드와 맞물려 있고, 저자인 노부코가 이야기 하듯 “저는 남편이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소설의 주제의식은 마키코의 말과 맞물려 표현된다. 마키코는 요코와 가즈에에게 줄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우연히 영어권 서가에서 글자 하나를 읽게 된다.

“What should we do.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코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로 <인간>으로 태어나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빨리 그것을 알고 싶었다(p64).

요시야 노부코가 니토베 이나조에게 들었던 말,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은 물망초 전체에 은은하게 피어나는 서사적인 힘이며 단단한 정서적 완력에 힘을 부여하며 인간이란 본연의 의미를 사유하는 요소가 된다. 결국 우리는 남성이자 여성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정답에 도달한다. 물망초는 순수한 우화로써 순수한 물음을 여성 화자의 힘을 빌려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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