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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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를 집필한 요시야 노부코는 남존여비 사상을 답습했던 어머니와 다툼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하듯 현모양처를 육성하는 교육 방식을 고수했고,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말은 다름 아닌 사상가 니토베 이나조의 말이었다. 

"현모양처가 되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완성이 중요하다"

요시야 노부코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아 문학 작품들을 탐독하며 자신의 글을 써 내려 가기 시작한다. 물망초는 그녀의 소설 중에서 그녀의 삶을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 고등학교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3명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서두에 이를 <세 유형>으로 구별 짓는데, 이는 소설에서 주요한 특징점이라 할 수 있다. 아이바 요코는 립스틱과 콤팩트를 바르며 트랜드에 민감하고 크라이슬러 자가용을 타는 공주님의 전형처럼 매력을 뿜어내고, 사에키 가즈에는 학급에서 제일 가는 모범생으로 공부만 열중한다고 해서 로봇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유게 마키코는 개인주의자로 말이 없지만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요코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 유형은 소설의 입체적인 에너지를 부여하고, 우화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물망초의 꽃말처럼 진실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점들이 인상적이다.

특별히 미사코의 가정을 묘사 할 때 요시야 노부코의 삶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키코의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신념을 고수하는 아버지의 다툼은 그 시대에 탈피할 수 없었던 한계에 부딪히는 한 소녀의 용기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상고하게 된다. 또한 소설은 근대적인 여성관을 넘어 현대의 여성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혹은 시대적 변화에 대한 요청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의 옷을 입고 있고, ‘여성’은 선입견과 투쟁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코는 마키코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이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상 동성애적 코드와 맞물려 있고, 저자인 노부코가 이야기 하듯 “저는 남편이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소설의 주제의식은 마키코의 말과 맞물려 표현된다. 마키코는 요코와 가즈에에게 줄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우연히 영어권 서가에서 글자 하나를 읽게 된다.

“What should we do.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코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로 <인간>으로 태어나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빨리 그것을 알고 싶었다(p64).

요시야 노부코가 니토베 이나조에게 들었던 말,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은 물망초 전체에 은은하게 피어나는 서사적인 힘이며 단단한 정서적 완력에 힘을 부여하며 인간이란 본연의 의미를 사유하는 요소가 된다. 결국 우리는 남성이자 여성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정답에 도달한다. 물망초는 순수한 우화로써 순수한 물음을 여성 화자의 힘을 빌려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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