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망초를 집필한 요시야 노부코는 남존여비 사상을 답습했던 어머니와 다툼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하듯 현모양처를 육성하는 교육 방식을 고수했고,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말은 다름 아닌 사상가 니토베 이나조의 말이었다. 

"현모양처가 되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완성이 중요하다"

요시야 노부코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아 문학 작품들을 탐독하며 자신의 글을 써 내려 가기 시작한다. 물망초는 그녀의 소설 중에서 그녀의 삶을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 고등학교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3명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서두에 이를 <세 유형>으로 구별 짓는데, 이는 소설에서 주요한 특징점이라 할 수 있다. 아이바 요코는 립스틱과 콤팩트를 바르며 트랜드에 민감하고 크라이슬러 자가용을 타는 공주님의 전형처럼 매력을 뿜어내고, 사에키 가즈에는 학급에서 제일 가는 모범생으로 공부만 열중한다고 해서 로봇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유게 마키코는 개인주의자로 말이 없지만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요코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 유형은 소설의 입체적인 에너지를 부여하고, 우화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물망초의 꽃말처럼 진실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점들이 인상적이다.

특별히 미사코의 가정을 묘사 할 때 요시야 노부코의 삶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키코의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신념을 고수하는 아버지의 다툼은 그 시대에 탈피할 수 없었던 한계에 부딪히는 한 소녀의 용기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상고하게 된다. 또한 소설은 근대적인 여성관을 넘어 현대의 여성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혹은 시대적 변화에 대한 요청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의 옷을 입고 있고, ‘여성’은 선입견과 투쟁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코는 마키코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이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상 동성애적 코드와 맞물려 있고, 저자인 노부코가 이야기 하듯 “저는 남편이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소설의 주제의식은 마키코의 말과 맞물려 표현된다. 마키코는 요코와 가즈에에게 줄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우연히 영어권 서가에서 글자 하나를 읽게 된다.

“What should we do.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코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로 <인간>으로 태어나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빨리 그것을 알고 싶었다(p64).

요시야 노부코가 니토베 이나조에게 들었던 말,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은 물망초 전체에 은은하게 피어나는 서사적인 힘이며 단단한 정서적 완력에 힘을 부여하며 인간이란 본연의 의미를 사유하는 요소가 된다. 결국 우리는 남성이자 여성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정답에 도달한다. 물망초는 순수한 우화로써 순수한 물음을 여성 화자의 힘을 빌려 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배경으로 펼쳐 지는 이 이야기는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한다. 베네수엘라는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에서 치안이 좋지 않기로 명성이 자자한 나라이다. 살인률 세계 1위, 범죄율 세계 1위의 국가로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에선 하루에 무려 21명이 살해된다고 한다. 작가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는 카라카스 출신으로 베네수엘라의 어려움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기에 소설은 사회의 암담함을 반영하면서도 사회 고발적인 면도 들어가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주요한 혁명적인 인물(차베스)에 대해선 전혀 논의되지 않지만, 배경을 베네수엘라로 설정한 것은 분명히 저자의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아델라이다는 카라카스 출신으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죽음과 늘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에 그녀가 살던 건물에 한 무리의 혁명단과 보안관들이 침입하면서 그녀는 그녀의 친구였던 아나라는 여자의 남동생 혁명단이 된 산티아고와 조우한다. 산티아고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많은 이들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던 중에 이웃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스페인 여자의 딸’로 불리는 아우로라 페랄타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델라이다는 페랄타의 스페인 여권 발급이 허가 되었다는 우편물을 보고, 그녀의 신분을 훔쳐 베네수엘라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우로라 페랄타가 되어 스페인에 입국한다. 카라카스의 밤을 잊고 새로운 출발은 그녀에게 과연 아름다울까?


스페인 여자의 딸은 독자들에게 생존이 강제되는 잔인함과 도덕적인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실상 아델라이다에겐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종착지를 피할 안식처만 필요할 뿐이다. 그녀는 역설적으로 국가 있는 이방인이다. 늘 국가를 떠나 삶과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늘 상 경험하기 때문이다. 페랄타가 되어 가는 과정을 곧 시작 할 때 아델라이다는 이렇게 말한다. 


“후회할 때가 아니야. 나 자신에게 말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야.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가 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는 그녀의 덤덤한 호소 속에서 삶의 숭고함이 무가치하게 소비된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 생존을 위해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다른 내가 된다는 것. 아니 되어야만 한다는 것. 무조건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아델라이다의 스페인 여자의 딸로 사는 삶이 어떨지를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하게 된다. 소설이 끝나고 나서도 그녀의 삶이 공허하지 않기를, 찬연한 삶이 깃 들기를 그렇게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판날의 거장은 레오 페루츠의 작품으로 그의 장기인 환상의 요소를 접목시켜 미스테리와 서스펜스적인 장르적 쾌감을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동 시대에 이러한 환상과 초현실적인 측면을 활용하여 뒤늦게 주목을 받았던 카프카와는 달리 대중적으로도 성공했던 레오 페루츠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지기도 하였다. 심판날의 거장 또한 매력적인 스토리로 영화와 오디오북등 다양한 매체로 재탄생 된 걸작 중에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독서 포인트는 이 소설은 1인칭 관점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1인칭 관점을 통해 독자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어느 시선의 한계와 동시에 소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1인칭 관점의 특성상 무엇이 진실인지를 객관적으로 정보를 종합한다거나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독자들은 ‘나’를 쫓아가면서 생생한 긴장감과 현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심판날의 거장은 레오 페루츠의 작품으로 그의 장기인 환상의 요소를 접목시켜 미스테리와 서스펜스적인 장르적 쾌감을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동 시대에 이러한 환상과 초현실적인 측면을 활용하여 뒤늦게 주목을 받았던 카프카와는 달리 대중적으로도 성공했던 레오 페루츠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지기도 하였다. 심판날의 거장 또한 매력적인 스토리로 영화와 오디오북등 다양한 매체로 재탄생 된 걸작 중에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독서 포인트는 이 소설은 1인칭 관점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1인칭 관점을 통해 독자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어느 시선의 한계와 동시에 소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1인칭 관점의 특성상 무엇이 진실인지를 객관적으로 정보를 종합한다거나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독자들은 ‘나’를 쫓아가면서 생생한 긴장감과 현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근거 없이, 때로는 근거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상.

심판날의 거장은 초반부터 후반부 이야기까지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찾아 단서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인 퇴역 장교 요슈 남작은 자살인지, 살인인지 모를 사건에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다. 그가 범인으로 지목 된 이유는 유명 궁정 배우로 활동하는 요이겐 비쇼프라는 인물이 요슈의 옛 연인인 디나와 결혼하면서 둘의 관계에 대한 연정과 질투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에서 비롯된다. 죽음의 현장에서 요슈의 혐의를 판단하는 두 그룹이 존재하는데, 그 인물은 펠릭스와 고르스키 박사와 엔지니어 졸그루프다. 디나의 남동생인 펠릭스는 연정을 품어 왔다는 것을 근거로 요슈 남작을 의심하고 범인으로 몰아가지만, 고르스키 박사와 졸그루프는 수수께기로 점철 된 이 사건에 근저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음을 직감하며 단서들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은 축적되는 단서들을 통해 범인을 찾아 나가게 되는데, 이 지점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심지어 ‘나’인 요수 백작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까지도 의심하게 되는데, 이는 레오 페루츠의 특기인 ‘환상’의 대입을 통해 요슈 백작 정서와 주변 환경들을 혼란스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예술가적 ‘공포’로 귀결된다.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공포’라는 건 어쩌면 근거 없이, 근거 있는 것처럼 존재를 압박한다. 고르스키 박사가 극 후반부에 비쇼프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약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강화 시키려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견뎌낼 수 없는 공포로 영혼을 붙잡아 죽음으로 끌어 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범인은 인간에게 잠재 되어 있는 상상이란 공포였던 것이다. 

“이런 극악무도한 일이! 아시겠습니까? 상상력이 자리한 곳은 공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공포와 상상력은 분리할 수 없게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공상가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이기도 했죠.”

심판의 날의 거장의 독일어 제목은 Der Meister des jüngsten Tages이다. 여기서 Der Meister는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 예술가, 전문가 등등이다. 이는 양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예술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죽음의 주인이 인간의 잠재 의식인 ‘상상’이라는 점을 말하는 독특한 소설이다. 인간과 예술이 일체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반대로 일상으로 회귀하는 요조 남작의 외로운 발걸음이 나에게 쓸쓸함으로 다가 왔다. 심판의 날의 거장은 추리소설의 탈을 쓴 실존적인 물음과 동시에 뇌과학적인 논의까지 흥미로운 지점들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왜 레오 페루츠의 소설이 사랑 받는지를 여지 없이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니, 추리소설의 맛과 미스테리, 서스펜스를 넘어 또 다른 분위기의 책을 원한다면 추천해주고싶다.

심판날의 거장은 초반부터 후반부 이야기까지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찾아 단서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인 퇴역 장교 요슈 남작은 자살인지, 살인인지 모를 사건에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다. 그가 범인으로 지목 된 이유는 유명 궁정 배우로 활동하는 요이겐 비쇼프라는 인물이 요슈의 옛 연인인 디나와 결혼하면서 둘의 관계에 대한 연정과 질투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에서 비롯된다. 죽음의 현장에서 요슈의 혐의를 판단하는 두 그룹이 존재하는데, 그 인물은 펠릭스와 고르스키 박사와 엔지니어 졸그루프다. 디나의 남동생인 펠릭스는 연정을 품어 왔다는 것을 근거로 요슈 남작을 의심하고 범인으로 몰아가지만, 고르스키 박사와 졸그루프는 수수께기로 점철 된 이 사건에 근저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음을 직감하며 단서들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은 축적되는 단서들을 통해 범인을 찾아 나가게 되는데, 이 지점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심지어 ‘나’인 요수 백작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까지도 의심하게 되는데, 이는 레오 페루츠의 특기인 ‘환상’의 대입을 통해 요슈 백작 정서와 주변 환경들을 혼란스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예술가적 ‘공포’로 귀결된다.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공포’라는 건 어쩌면 근거 없이, 근거 있는 것처럼 존재를 압박한다. 고르스키 박사가 극 후반부에 비쇼프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약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강화 시키려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견뎌낼 수 없는 공포로 영혼을 붙잡아 죽음으로 끌어 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범인은 인간에게 잠재 되어 있는 상상이란 공포였던 것이다. 

“이런 극악무도한 일이! 아시겠습니까? 상상력이 자리한 곳은 공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공포와 상상력은 분리할 수 없게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공상가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이기도 했죠.”

심판의 날의 거장의 독일어 제목은 Der Meister des jüngsten Tages이다. 여기서 Der Meister는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인, 예술가, 전문가 등등이다. 이는 양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예술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죽음의 주인이 인간의 잠재 의식인 ‘상상’이라는 점을 말하는 독특한 소설이다. 인간과 예술이 일체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반대로 일상으로 회귀하는 요조 남작의 외로운 발걸음이 나에게 쓸쓸함으로 다가 왔다. 심판의 날의 거장은 추리소설의 탈을 쓴 실존적인 물음과 동시에 뇌과학적인 논의까지 흥미로운 지점들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왜 레오 페루츠의 소설이 사랑 받는지를 여지 없이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니, 추리소설의 맛과 미스테리, 서스펜스를 넘어 또 다른 분위기의 책을 원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
카트린 파시히.알렉스 숄츠 지음, 장윤경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여행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고 계획을 설계한다. 여행은 또 다른 세계와 나의 세계가 접붙임하는 경이로운 지점이다. 여행은 개인의 사고의 한계를 초월해 또 다른 삶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된다.

​마크 트웨인이 여행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바가 있다.

“여행은 편견, 아집, 그리고 편협함을 죽이는 것이다.”

Travel is fatal to prejudice, bigotry, and narrow-mindeness.

그렇다. 여행은 변화를 촉발한다. 내면의 고정되어 있던 세계는 편협함을 죽임으로써 확장된다. 하지만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방구석에서 쭈구려 있는 많은 이들에게 쉽사리 여행을 계획하기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 방구석에서 상상여행을 힘차게 펼칠 수 있는 책이 있다. 부키에서 출판된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라는 책이다.

“타임머신이라는 사변적인 아이디어 역시 맨 처음 일반 상대성 이론에 토대를 두며 떠올랐다. 아인슈타인을 비웃지 않기 시작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

시간여행이란 탐구로 시작된 이 책은 아인슈타인의 연구를 토대로 쓰여졌다. 과학의 발전은 이처럼 인간의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시간여행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영화 백 투더 퓨처 또한 아인슈타인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이는 놀라운 성과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서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은 시간여행을 다녀왔던 한 사람이 직접적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지고, 책의 제목처럼 시간을 종횡무진하며 각기의 주제들을 실감나게 다룬다. 아 참.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가이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측면에서 책의 저술의도와 저자의 재기발랄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동독과 서독이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보고 하기 위한 위장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쉽사리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던지, 공룡 시대를 떠날 때 예기치 않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식량을 직접적으로 지참해야 한다던지, 그에 따라 시대별로 고양시켜야 할 ‘건강 유지를 위한 몇 가지’의 조언을 한다는 것들은 역사적인 서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상상의 나래를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는 동기로써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21장인데, “나를 누구라고 소개할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왜냐하면 시간여행을 떠나는 주제로 만든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 아이러니는 늘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여행하고는 다르게 그 시대 사람들은 지역적 차원을 넘어 시간적 차원에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해야 하는 지점에 봉착한다. 그러나 능숙한 ‘가이드’ 답게(?) 이를 잘 설명한다.

“당신이 어느 시대로 여행을 떠나느냐에 따라 여행사가 요구하는 지위가 달라진다. 1600년과 1800년 사이의 유럽으로 간다면, 남성 관광객들은 낯선 나라에서 온 귀족 신분을 가지고 과거로 보내진다. (중략) 여성인 당신이 중세가 근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가장 실용적이고 유익한 신원 중 하나는 기숙 신학교의 수녀다.”

​정말 그렇다. 만약 시간여행이 미래에 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그 시대의 어려움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미래’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가령 위계질서가 엄격한 사회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예절을 학습하지 않는다면 그 여행은 파멸을 야기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행은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되는 신비로운 과정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고, 세계를 알아가는 것. 역사의 찬연함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여행을 다체롭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주는 이 책은 단순히 시간여행에만 고립되진 않는다.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어떤 태도와 마음 가짐을 갖고 있어야 할지를 깨닫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가이드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여행을 보다 더 잘 떠나기 위해, 그리고 여행을 떠난 후로 앞으로 더 좋은 여행을 설계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가이드가 되기 위한 여정은 시대를 넘어 역사로의 여행을 가이드를 통해 섬세하게 경험하게 한다. 총 3부로 나눠진 이 책은 여러 역사를 다룬 책들과는 달리 기이 하지만, 기가 막힐 정도로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방구석에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책을 열어 가이드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를 위한 생물학 강의 - 우리를 둘러싼 아름답고 위대한 세계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물학에 관한 관심은 지난 세기를 거쳐 오면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학문 중에 하나다. 왜냐하면 인간의 세포를 이용한 생명연장에 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앞으로의 삶의 광의적인 가능성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지대한 관심은 생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촉발되는데,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는 책이 최근에 까치글방에서 출판 된 <모두를 위한 생물학 강의>라는 책이다. 물론 생물학을 접근하는 태도는 실용적인 측면으로부터만 야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생물과 상호적으로 존재하는 공간과 환경이 시대를 관통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생존하며 진화해왔는지를 관망하는 경험은 아름다운 탐험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사라시나 아사오는 분자고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주로 동물의 골격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생물학에 대한 아름다움과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그는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상들을 직관한다. 과학은 사실의 학문이자, 가설의 학문이다. 가설에 대한 연역에서 100퍼센트로 도달하는 길은 없으며, 점진적으로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저자가 학문의 겸손하게 다가가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책의 챕터는 1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장의 이야기는 단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내용의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게끔 친절한 예시로부터 시작하여, 비교적 깊은 과학적인 논의까지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령 보수신학을 전공했던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다빈치가 이전에 다뤘던 노아 시대의 대홍수를 부정했다는 사실을 재해석하는 부분이었다. 노아의 홍수로 인해 지상의 생물이 완전히 멸종했다는 성서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먼저 다빈치는 쌍각류 조개를 근거로 노아의 홍수를 반박하는데, 조개껍데기가 탄산칼슘으로 구성되어 단단하지만, 유기물이기 때문에 한없이 약한 부분도 존재한다. 만약 인류를 휩쓸어 버릴 홍수가 일어났다면 쌍각류 조개의 약한 부분인 질긴띠가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지역에 2개의 껍데기가 붙어 있는 조개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노아의 홍수를 반증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이는 근본주의신학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것이지만, 반대로 성서해석이 논파해야 할 가능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전공이 더욱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나에게 인상 깊었던 점이 직립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의 장, 단점을 나열하는 것이었다. 장점 몇 가지를 말하자면 햇빛에 노출되는 면적이 감소한다던가, 에너지 효율이 좋다던가, 두 손이 자유로워 서 식량을 운반할 수 있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를 인류 문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진화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일부일처 사회에서 자손의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직립 이족 보행으로 진화 되었다든지, 다른 동물들이 공격의 수단으로 송곳니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짐승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숲이나 동굴 속에서 살았고, 후에 송곳니와 같은 무기를 만들었다는 그의 논의들은 단순한 생물학이 과학의 영역에서만 연구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모두를 위한” 생물학 강의다. 생물학을 입문하기엔 이만큼 적절한 책이 어디있을까 싶다. 저자가 지금까지 발행한 책들인 <화석 분자 생물학>, <잔혹한 진화론>, <절멸의 인류사>, <폭발전 진화>들은 독자들에게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생물학의 묘미를 맛 볼수 있게 해준다. 과학을 어려운 영역으로 항상 스킵 했 던 이들에게 사라시나 이사오라는 이름은 생물학의 다른 이름으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