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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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이야기에서는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물건을 고이 아껴 쓰면
거기에 혼이 깃들어 도깨비가 된다고 했다.
오늘날, 소비가 미덕인 이 시대에 도깨비로 다시 깨어날 만큼 오래 묵은 물건은 보기 드물다.
금방 쓰이고 금방 버려지는 상품들이 산을 이루는 세상이다.
어떤 도시에서는 전세계에서 버려진 것들이 흘러들어 더미를 이루다 못해
도시마저 삼켜버릴 정도라고 한다.

쓰레기의 무덤이 가득한 이 시대에
'윤광준의 생활명품101'은 내 주변의 물건 하나하나를 둘러보고 눈맞추는 경험, 물건의 실용성과 매력을, 어쩌면 소명까지를 발굴하고, 그에 대한 애정을 키워감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규격에 맞추어 일률적으로 생산되는 상품들의 홍수 속에서
나만의 것을 찾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떠한 소신이나 기준을 세우더라도 우리는 소비자로서 광고와 마케팅의 속삭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물건을 아낀다는 건 소비의 대상인 상품을 내 삶 속 물건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품도 손때가 묻으면 도깨비가 될 수 있을까,
오로지 소비를 위해 대량생산된 텅 빈 제품들에도 영혼이, 그 물질성에 의해 자가소멸되지 않는 영혼이 자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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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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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븐포트의 '스틸라이프'는 역사 속 정물화(기술된 역사의 흐름을 뒷받침하는 부수적인 것으로서의)가 아니라 정물화의 역사를 따라, 한 시대 내에서 (풍경화나 인물화보다 강한) 혈연관계로 묶인 정물화들을 들여다봄으로써 한 발자국씩 걸어 내려오는 책이다. 다만 그것은 반듯한 직선을 그리는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지럽게 배열된 정물"을 그려낸 모습에 가깝다. 대븐포트는 이 시와 저 그림, 이런 희곡과 저런 소설을 오가다가는, 다시금 어느새 정물로 돌아와 있다. 정물은 순간마다 다른 상징으로, 대담한 이미지로, 새로운 도식으로 재창조된다.

말 없는 정물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유한한 삶과, 삶의 고통과 희망과, 아름다움과 비극, 병과 약, "조화로운 무질서", 그 모든 것이 나름의 방식대로 격렬하게 넘실거린다. 이 물결 속에서 잘 닦인 길을 찾고자 한다면 오히려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만약 대븐포트의 글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면 앞으로 돌아와 옮긴이의 글을 다시금 펼쳐 봄으로써 일렁이는 물결을 즐기는 법을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듯 읽어보지 않은 시를 찾아 읽고, 이해 안 되는 영화를 돌려보듯 돌아가서 다시 읽고, 저자가 슬쩍 언급하고 지나간 어떤 인물을 찾아보다가 한나절을 보내거나 하는 식이 된다. 그러다 보면 인류사 속 작은 골목길, 들판을 걷다가 바람을 얼굴에 느끼기도 하고, 혁명 정신에 사로잡히기도 했다가, 앞서간 외로운 선배들의 방에 앉아 감상에 젖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각자는 "이 책 읽기의 시작과 끝이 다를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은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스틸라이프'의 역자 노트를 읽다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애정이 담뿍 담긴 이 서문은 '스틸라이프'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들도 덩달아 대븐포트의 글이 주는 매력에 한 발짝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준다.

#도서협찬 #도서제공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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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위기 - 스웨덴 출산율 대반전을 이끈 뮈르달 부부의 인구문제 해법
알바 뮈르달.군나르 뮈르달외 지음, 홍재웅.최정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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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출산율을 필요로 한다. 출산율이 이 최소한의 수치에 미달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다. 출산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출산이 그들의 생활수준을 낮추게 될 때 출산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 사회의 출산율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며 전반적 생활수준 역시 낮아진다.
알바 뮈르달, 군나르 뮈르달의 ‘인구 위기’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생산과 소비, 분배 정책과 분리될 수 없음을 촘촘한 설명을 통해 보여준다. 저출산이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은, ‘나 혼자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와 같은 말이 단적으로 보여 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출산과 양육의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되어,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개인은 출산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뮈르달 부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을 개인에게만 떠넘기기보다 사회가 어느 정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을 더해 뮈르달 부부는 아동수당, 무상 의료, 무상 학교교육 등의 아동복지 정책을 제시해 준다.
이것은 한편,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의 수를 늘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냥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인구정책은 아이를 길러야 하는 부모의 입장, 태어나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입장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어쨌든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생겨나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니까. 아이가 태어나서 가정 내에서 또는 사회적 양육 환경 하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자랄지, 사회에서 어떠한 교육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자라서 어떤 직업을 택할 수 있을지…… 그 모든 문제가 인구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다만 현재 우리의 시대에서는 인구정책의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살피는 것에 더해 생태학적 고민도 필요하다. 1930년대의 뮈르달 부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 기반을 다지기 위해 생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구정책적 관점의 핵심인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가(p.310)’라는 질문은 이제 생태학적 관점에서 재사유되어야 한다. 우리의 소비와 생산 수준이 생태학적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균형이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균형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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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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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서평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풀어 놓은 거센 급류에 아무렇지 않게 합류할 수 있는 흐름의 글이 나로부터 터져나오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지만 - 마치 기묘한 물의 흐름에 매혹되어 물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고 싶어지는 경험처럼 - 이 때로는 청명하고 투명한, 때로는 심연 같고 폭풍 같은 글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구아 비바에는 위와 아래도, 앞과 뒤도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하든 똑같이 길을 잃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글의 뼈대를, 책 전체의 골격을 의도적으로 포기하고 대신 더욱 무시무시한 것을 불러내었다.

"그 기이함이 나를 장악한다. 그래서 나는 검은 우산을 펼쳐 든 채 춤의 향연 속으로, 별들이 반짝이는 그곳으로 뛰어든다. 내 안의 격렬한 신경, 그것이 뒤틀린다. 이른 시각이 다가와 핏기 없는 나를 발견할 때까지. 이른 시각은 거대하고 나를 먹어 치운다. 돌풍이 나를 부른다. 나는 돌풍을 따라가며 갈가리 찢긴다. 만일 내가 내 삶 속에서 펼쳐지는 펼쳐지는 게임 속으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내가 속한 종이 자살할 때 내 삶 역시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아구아 비바에서는 아무런 형상도 부여받지 못했던 것들이 형체를 취하고, 견고한 몸을 가졌던 것들이 해파리마냥 풀어져 소멸한다. 삶이 이토록 겹겹이 어지럽다. 그래서 아구아 비바를 읽을 때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독서는 불가능해진다. 그저 따라가는 글, 그 자체로 감각하는 글만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세계다. 살기 위해 필요한 몸부림을 주는/몸부림으로부터 오는 죽음의 글이다.

"나는 생명과 함께 죽고 싶다. 맹세코, 나는 죽을 때 그 마지막 순간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것이다. 내 안에는 언제일지는 모르되 다시 태어날 심오한 기도가 있다. 그래서 나는 건강하게 죽고 싶다. 폭발하는 사람처럼. .. "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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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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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발명가다." 왜냐면 건축물을 이루는 벽, 창문, 지붕, 계단, 문 등에 새로운 생각을 녹여내어 공간을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건축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지식의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듯이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세상과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나아가 그러한 이해와 해석을 반영하여 공간을 구축한다. '인문 건축 기행'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기발한 생각을 담은 삼십 개의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떠한 건축물이 전통 혹은 전통적 지식을 계승할 것인지 아니면 재구성할 것인지, 또는 공간의 구성과 기능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을 담을지는 건축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통을 재구성한 사례로 독일 베를린의 국회의사당을 보자(건축가 : 노먼 포스터). 독일 국회의사당의 돔은 전망대로 되어 있어 누구든 그 위로 올라가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시민에게 베를린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점을 제공하는 셈인데. 내려다보는 것은 최고 권력자의 시선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 시대의 사고를 반영한 건축물이다. 또 다른 사례로 동양 건축의 전통과 서양 건축의 전통을 동시에 깨면서 담장의 배치와 빛의 활용으로 파격을 구성해낸 일본 오사카의 빛의 교회도 있다(건축가: 안도 다다오).

건축된 공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건축이 자연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반영한 사례도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낙수장(Falling Water)이다(건축가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이름 그대로 집이 폭포 위에 있다. 또는 아름다움은 규칙성에 근거한다는 생각을 탈피해 자연의 불규칙한 아름다움을 재현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도미누스 와이너리(Dominus Winery)도 있다(건축가 : 자크 헤르조그, 피에르 드 뫼롱).

이외에도 '인문 건축 기행'에는 공간, 아름다움, 자연, 나아가 세계에 대한 건축가들의 독창적 시각이 뿌리내린 건축물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설명이 가득 담겨 있다. 올해 유럽, 북미, 아시아 국가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인문 건축 기행'을 미리 읽고 여행 중 책에 수록된 건축물들의 모습을 직접 만나 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겠다.


• 을유 서포터즈 3기의 첫 번째 도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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