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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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븐포트의 '스틸라이프'는 역사 속 정물화(기술된 역사의 흐름을 뒷받침하는 부수적인 것으로서의)가 아니라 정물화의 역사를 따라, 한 시대 내에서 (풍경화나 인물화보다 강한) 혈연관계로 묶인 정물화들을 들여다봄으로써 한 발자국씩 걸어 내려오는 책이다. 다만 그것은 반듯한 직선을 그리는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지럽게 배열된 정물"을 그려낸 모습에 가깝다. 대븐포트는 이 시와 저 그림, 이런 희곡과 저런 소설을 오가다가는, 다시금 어느새 정물로 돌아와 있다. 정물은 순간마다 다른 상징으로, 대담한 이미지로, 새로운 도식으로 재창조된다.

말 없는 정물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유한한 삶과, 삶의 고통과 희망과, 아름다움과 비극, 병과 약, "조화로운 무질서", 그 모든 것이 나름의 방식대로 격렬하게 넘실거린다. 이 물결 속에서 잘 닦인 길을 찾고자 한다면 오히려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만약 대븐포트의 글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면 앞으로 돌아와 옮긴이의 글을 다시금 펼쳐 봄으로써 일렁이는 물결을 즐기는 법을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듯 읽어보지 않은 시를 찾아 읽고, 이해 안 되는 영화를 돌려보듯 돌아가서 다시 읽고, 저자가 슬쩍 언급하고 지나간 어떤 인물을 찾아보다가 한나절을 보내거나 하는 식이 된다. 그러다 보면 인류사 속 작은 골목길, 들판을 걷다가 바람을 얼굴에 느끼기도 하고, 혁명 정신에 사로잡히기도 했다가, 앞서간 외로운 선배들의 방에 앉아 감상에 젖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각자는 "이 책 읽기의 시작과 끝이 다를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은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스틸라이프'의 역자 노트를 읽다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애정이 담뿍 담긴 이 서문은 '스틸라이프'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들도 덩달아 대븐포트의 글이 주는 매력에 한 발짝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준다.

#도서협찬 #도서제공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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