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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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서평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풀어 놓은 거센 급류에 아무렇지 않게 합류할 수 있는 흐름의 글이 나로부터 터져나오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지만 - 마치 기묘한 물의 흐름에 매혹되어 물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고 싶어지는 경험처럼 - 이 때로는 청명하고 투명한, 때로는 심연 같고 폭풍 같은 글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구아 비바에는 위와 아래도, 앞과 뒤도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하든 똑같이 길을 잃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글의 뼈대를, 책 전체의 골격을 의도적으로 포기하고 대신 더욱 무시무시한 것을 불러내었다.

"그 기이함이 나를 장악한다. 그래서 나는 검은 우산을 펼쳐 든 채 춤의 향연 속으로, 별들이 반짝이는 그곳으로 뛰어든다. 내 안의 격렬한 신경, 그것이 뒤틀린다. 이른 시각이 다가와 핏기 없는 나를 발견할 때까지. 이른 시각은 거대하고 나를 먹어 치운다. 돌풍이 나를 부른다. 나는 돌풍을 따라가며 갈가리 찢긴다. 만일 내가 내 삶 속에서 펼쳐지는 펼쳐지는 게임 속으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내가 속한 종이 자살할 때 내 삶 역시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아구아 비바에서는 아무런 형상도 부여받지 못했던 것들이 형체를 취하고, 견고한 몸을 가졌던 것들이 해파리마냥 풀어져 소멸한다. 삶이 이토록 겹겹이 어지럽다. 그래서 아구아 비바를 읽을 때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독서는 불가능해진다. 그저 따라가는 글, 그 자체로 감각하는 글만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세계다. 살기 위해 필요한 몸부림을 주는/몸부림으로부터 오는 죽음의 글이다.

"나는 생명과 함께 죽고 싶다. 맹세코, 나는 죽을 때 그 마지막 순간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것이다. 내 안에는 언제일지는 모르되 다시 태어날 심오한 기도가 있다. 그래서 나는 건강하게 죽고 싶다. 폭발하는 사람처럼. .. "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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