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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1 - 소장판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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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하면 스포츠를 소재로 한 청춘 남녀의 연애물이 떠오르고 가장 많이 다뤄지는 종목은 야구가 아닌가 싶다.그리고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 중 대표작은 터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H2를 더 좋아한다.아마 더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과 사연, 그리고 다양한 사건의 복선이 치밀하게 다뤄지기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상하게 터치는 진도가 안 나갔던 기억이 난다.다시 읽어 보면 다르려나??)


최고의 투수 히로와 최고의 타자 히데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히로와 단짝 친구였지만 히로의 소개로 히데오의 여자친구가 된 히까리, 마지막으로 히로와 같은 고등학교 친구인 하루까. 이렇게 4명의 히어로(남자주인공)와 히로인(여자 주인공)이 갑자원을 목표로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야구를 그만두고 야구부 없는 학교로 진학한 히로는 야구부 창설을 통해 갑자원을 노리고 강력한 타자층을 보유한 학교로 진학한 히데오 또한 갑자원을 목표로 한다. 물론 이 둘 사이에는 히까리가 미묘한 위치에서 섬세한 감정선을 그려낸다. 어릴 때부터 늘 함께 했고 늦게 키가 커서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히로와 그가 이미 다 큰 후에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된 히데오 이 둘 사이에서 어쩔 수 없지만 한 마디로 쉽게 단정짓기 힘든 감정을 작가는 섬세한 그림체와 복선으로 은은하게 그려 나간다. 열혈 청춘 야구만화를 표방하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상큼하고 잔잔하며 조용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혹자는 러프를 아다치 최고의 작품으로 손 꼽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H2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인물과 그들 개개인의 사연, 4명의 남녀 주인공을 등장 시킴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영역이 더 넓어진 탓이 아닐까 한다. 1권을 사면서도 잘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는데 다 읽자마자 후회했다. 진작 살걸...왜 이제야 샀을까 하면서...


만화토피아라는 책에서 오은하 작가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한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내일의 조와 같이 처절한 주인공이 아니라 구름에 달 가듯 무심한 주인공을 선호하는 시대로 말이다.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의 내면이 가볍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리라. 드러내지 않을 뿐 이들의 내면은 누구보다 깊고 잔잔하면서 쉽게 변치 않으니까. 수많은 명장면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걸 보면 이 작가는 오직 만화라는 장르에서만 가능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삭막한 일상을 잠시 잊고 말랑말랑한 청춘의 감수성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바로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뜨거운 여름. 갑자원의 계절. 점점 더워지는 요즘 H2를 읽기에는 제격인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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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시대 4 - 메이지 유성우 편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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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인들의 삶을 주를 이루던 1,2,3권과는 달리 4권은 내용의 중점이 메이지 시대 싹 트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다른 서양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빈부 격차가 심화되자 당시 독일,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이론이 들어 오면서 무정부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정부는 이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방식은 경찰을 통한 감시(감시라고는 하지만 늘 따라 다녀서 감시하는 자와 감시 당하는 자 사이에 친분이 생길 정도다.)와 출판물 금지등 여러 가지가 사용된다. 


그런데 이런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자들 중에서도 당연히 온건파와 급진파가 나뉘게 되고 그런 와중 급진파가 제도권 내에서의 이성적인 타협이나 투표보다는 투쟁을 통한 의지 표명이 단기간에 목표 달성에 더 적합한 수단임을 주장하고 이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한편 메이지 정부는 러일 전쟁 후 새로운 목표를 상실한 상태였고 힘이 커지는 일본을 서양이 힘을 합쳐 경계할 것이라는 우려에 각종 사상의 확산으로 인한 국내의 분열은 국력 증진에 심각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 힘으로 누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새로운 혁명 세력 또한 급진적이 되고 이에 대응하는 정부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와중 몇몇 사람들이 천황에게 테러를 가해 그 또한 평범한 인간임을 국민들에게 일깨우고자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실행을 위해 폭탄 제조를 비밀리에 실행하게 되나 계획이 누설 주 공모자들이 체포된다. 그렇지만 정부는 단순 모의에 불과한 이 일을 확대하기로 결정, 실질적으로 별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모두 엮어 피고인 26명 중 24명에게 사형을 선고, 12명은 사형 집행 나머지 12명은 무기 징역에 처한다.그리고 다른 2명 또한 각각 8년과 11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게 된다. 


메이지41년 대역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혁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만든 젊은이들이 이제 늙어 자신들이 이룬 국가의 기반이 새로운 사상으로 흔들릴까 두려워 이를 억누른 것으로 저자는 평가한다. 처형 당한 이들은 실제 테러가 아닌 위험한 사상으로 인해 처벌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는 당시 문인들에게도 불길한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 결국 메이지 정신은 이때 죽어버렸고 결국 쇼와20년의 파국으로 향하는 레일로 올라섰다고 결론 내린다. 


한 시대를 이루는 시대 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정신이 사라질 때 시대 또한 종언을 고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메이지라는 신 시대를 열었던 주력들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막아버리는 보수 세력으로 변했다는 것은 섬세한 감성의 문인들에게 각자 다르지만 실망과 분노 자포자기 등 다양한 여러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4권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문인들 이야기에서 왜 갑자기 사회주의 운동으로 주제가 바뀌었는지 의아했는데 읽고 나니 그 이유가 납득이 될뿐 아니라 문인들이 이 책의 중심이 된 것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메이지 정신이 죽어 버린 이 상황에 5권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될 지 사뭇 궁금하다. 이야기는 다시 나쓰메 소세키 선생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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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veable Feast (Paperback) Vintage Classics 334
Hemingway, E. / Vintage/Ebury (a Division of Random House Gro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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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are lucky enough to have lived in Paris as a young man, then wherever you go for the rest of your life, it stays with you, for Paris is a moveable feast."


아직 그 나이가 되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노년이 되면 사람은 지난 시절 특히 젊은 나날을 돌이켜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들도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헤밍웨이 또한 예외가 아닌지 젊고 가난했지만 순간 순간이 충만했던 그 시절을 글로 남겼다.그리고 그 시기는 그가 첫 번째 부인과 함께 파리에서 보낸 1920년대였다.(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헤밍웨이는 결혼을 4번 했다.그리고 이 글은 1957년 쓰기 시작해서 1960년 즉 사망하기 1년 전에 완성한다.)


2차 대전 이전, 아직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파리로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든 건 놀랍지 않다. 그래서일까?  젊은 헤밍웨이는 부인과 함께 이곳에서 매일 글을 쓰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거투르드 스타인(그 유명한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을 한 당사자!다만 이 사람이 한 Lost generation이란 표현은 결코 그렇게 낭만적인 의미가 아닌 것 같다.너희 세대는 존경을 모른다,뭐 이런 뉘앙스?),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더블린 사람들의 작가)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를 쓴 그 작가 맞다!)


아직 작가로 유명해 지기 전인 헤밍웨이는 신문사나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는 등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책 살 돈도 없을 정도다!) 그의 삶은 하루하루 활력과 생기로 가득하다. 부인 해들리 그리고 태어난 첫째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하고 매일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비슷한 시기 파리에서 보낸 조지 오웰의 글(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이 빈곤 그 자체로 가득한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걸 보면 비슷한 상황도 받아 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물론 조지 오웰의 상황이 더 안 좋았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파리에서 보낸 그의 하루하루는 따뜻하고 행복한 작은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다만 후반부 에서는 피츠제럴드가 부인 젤다로 인해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재능을 허비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한다.(위대한 개츠비를 이미 출판한 뒤였다.)


특별한 줄거리나 명확한 이야기 구조가 있는 것도 아닌 이 에세이에서(에세이니까 어쩌면 당연하다) 중심은 역시 젊은 헤밍웨이 그리고 파리가 아닌가 한다.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한, 그렇지만 패기 넘치던 청춘과 그 시절을 보낸 파리라는 도시. 아마 파리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무엇이었슴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저런 말을 한 게 아니겠는가.(Paris is a moveable feast!)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어쩌면 각자 자기만의 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말처럼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곳은 늘 우리와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20대의 기억이 언제나 우리 내면에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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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 of Angels (Mass Market Paperback)
Sheldon, Sidney / Grand Central Pub / 198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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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시드니 셀던이라는 이름은 꽤 유명했던 것 같다. 라디오에서도 신간 광고를 들은 적이 있고도서관에 가면 이 분 소설이 쉽게 눈에 띄었으니까. 나도 몇 권 읽어봤는데 페이지가 휙휙 넘어갈 정도로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특히 야한 장면은 단 몇 줄뿐인데도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매력이 있었다. 저자의 필력 덕분이리라.)


이번에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는데 page-turner라는 말이 왜 있는지 실감하게 할 정도로 내용이 쉽고 빠르게 읽힌다. 빠른 사건 전개와 부드러운 문장,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는 캐릭터들 때문인지 거침없이 진도가 나간다. 물론 내용과 인물들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전형적이라 어떻게 보면 너무 예측 가능해서 심심할 정도이긴 하다. 젊고 매력적이고 능력있는 여자 변호사, 남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젊은 마피아 두목(심지어 엘리트 출신!), 엄청난 집안을 자랑하는 잘 생기고 매력적이며 만능 운동남인 대형 로펌 변호사!(상원 의원 출마를 앞두고 있다!). 


젊은 여자 검사 시보는 근무 첫날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모든 언론이 주목하는 젊은 마피아 두목을 풀려나게 만들고 이 일로 인해 정계 진출을 꿈꾸던 담당 검사는 이 여자를 법조계에서 매장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지만 잘 생긴 대형 로펌 변호사는 언론의 뭇매를 맞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며도움을 주기 시작한다.이 변호사와 깊은 관계에 빠지고 임신까지 하게 되지만 본처마저 임신하며 상원 의원 출마를 앞둔 변호사는 본처를 선택하게 된다. 물론 이 변호사는 여성 변호사와의 관계도 유지하려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인연을 끊어 버리고 혼자 아이를 낳는다. 승승장구하던 이 여성 변호사는 어느 형사 사건 피의자에게 아이를 납치 당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젊은 마피아 두목의 도움으로 아이를 구하게 된 후 점점 마피아 세계의 사건을 다루기 시작하는데...


내용 자체야 놀라울 것도 없고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 책이 쓰여진 1980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흥미 진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로펌이라는 말조차 일반인들이 모르던 그 시절, 아니 변호사를 만나는 것조차 힘든 시절(당시 사시 합격자는 겨우 300명!판검사 제외하면 변호사 배출 숫자가 지금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다.)에  잘 생기고 유능한데 집안까지 빵빵한 유능한 남자 변호사라는 설정은 어떻게 보면 여성들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딱이 아닌가한다. 거기에 여주인공은 자립적이고 능력있고 미인이니 독자들이 감정 이입하기에 좋은 대상인 듯 하다. 거기에 지하 세계의 마피아 두목마저 잘 생기고 똑똑하다.(매력적인 나쁜 남자?)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는 전부 다 갖췄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이 작가의 주인공들이 보통 이런 여성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이니 지금에 와서 상투적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어쩌면 그 시대는 이런 주인공을 원할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성공이 힘들다는 방증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전형적인 이야기라 페이지가 너무 쉽게 넘어가서 나중에는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막판 결말 부분은 예측 가능한 스토리임에도 빠른 사건 전개와 더불어 박직감이 넘친다.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게 확실하다. 그리고 최종 결말 또한 너무나 현실적이라 이 또한 나쁘지 않았고. 통속 소설은 거의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부드럽고 쉽게 읽히는 문장에 독자가 쉽게 몰입하도록 만드는 내용이라 모르는 어휘도 바로바로 유추가 가능할 정도다. 영어 원서 추천을 하게 되면 앞으로는 시드니 셀던 소설을 가장 먼저 권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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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격자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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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독소 전쟁이 전체 비율의 80~90%를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실제로 독일군 사망자의 대부분이 동부 전선에서 발생했으니까. 그리고 유대인 학살은 잘 알려져 있지만 소련이 입은 피해는 큰 관심이 없는 게 보통이다. 군인 사망자가 최소 860만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 이르는 상상하기 힘든 수치임에도 종전 후 냉전이 곧 도래해서 인지 소련의 피해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많은 영상 매체에 비해 소련이 입은 피해의 실체를 그린 작품은 소련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류한수 교수님은 독소 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레닌그라드 포위로 인해 100만, 강제 노동을 통해 수백만, 피난길에 올랐다가 기아와 질병으로 수백만 등 여러 원인으로 죽어 갔지만 이것은 하나의 수치에 불과할 뿐 어떤 광경인지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자국 국민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게 아닌가 한다.그것도 전쟁 당시 가장 약자였던 어린이들의 시선을 통해 민간인들이 겪었던 고통의 실체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물론 이들은 살아 남아 인터뷰에 응할 당시는 이미 성인이었지만 전쟁 당시의 고통은 평생 그들과 함께 한다. 그렇기에 그 고통이 잊혀지지 않고 평생 그들과 함께 했고 선명한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가감없이 그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어머니가 미인이라는 게 결코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일찍 깨닫게 된 소녀,13살에 이미 가장이 되서 집을 고치고 헛간을 짓는 등 노동이 일상이 된 소년,엄마들의 품에서 아기를 뺏어 학살하는 광경을 목격한 어린이,한쪽 눈을 잃고 예전과 달리 웃지 않는 엄마 앞에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밤마다 홀로 우는 소녀, 전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부모를 지켜보는 아이들...(책에 실린 수많은 사연은 사실 훨씬 참혹하다.)


전쟁을 목격한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전쟁 도중 태어난 아이들조차 전쟁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현실은 이 전쟁이 소련 국민들에게 남긴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몇 백만이라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실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세는 비단 이 작가가 처음이 아니라 이미 종군 기자였던 바실리 그로스만의 글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 문학에 이어져 온 하나의 전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피에 젖은 땅의 저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말한다. 100만명이 학살당한 게 아니라 100만 번의 살인이 일어난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 한명 한명의 이름과 사연을 기억해야 한다고. 이 책의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일관되게 보여준 글쓰기 방식은 아마 이런 목적을 위해 취한 게 아닐까? 세상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직접 듣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마음의 상흔이 조금은 지워졌기를 바란다.이와 더불어 한 국가로서 러시아 정부를 향한 국제 사회의 적대감이 그 국민들에게까지 향하지는 않기를, 만약 그들이 서방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왜 그런지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졌으면 어떨까 한다.나폴레옹 전쟁과 독소 전쟁을 통해 초토화된 국가를 경험한다면 언젠가는 또 저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라는 트라우마를 가지지 않기란 힘들테니 말이다. 


독소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 중 생존자는 이제 많지 않을 것 같고 당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만이 살아 남았으리라.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 마지막 목격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고통과 상처가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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