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박완서 에세이

저자 박완서

출판 세계사

발행 2024.1.23.

“건강히 잘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시리게 펼쳐진 설원에서 먼저 떠난 이에게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건강히 잘 계신가요를 토해내던 여주인공의 잊을 수 없는 대사가 떠오릅니다.

내가 지나온 학생이던 시기에 그녀는 젠체하고 싶은 지적 허영심을 어렵지 않게 채워주던 맑은 글을 쓰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친구들과는 공감의 주제이자 공명의 순간을 갖게 해주었던 박완서 선생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미출간 작품을 포함해 총 46편의 에세이가 수록된 이번 책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10여년의 시간을 더욱 그리움에 깊게 잠기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육체는 존재에서 비존재가 되었으나 남겨진 유산은 영원한 존재의 대상으로 남게 합니다.

반가움과 그리움에 괜시리 시작을 비장하게 열었으나 책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촘촘한 망으로 거르듯 섬세함으로 일상을 살피고 기록하여 스며들게 하고 있습니다. 직접 읽어주는 듯 자세한 묘사와 담백한 문체는 체할 것처럼 한껏 멋 부린 인스턴트 같은 문장이 아니라 말을 살려내고 구조를 유려하게 엮어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정신의 평온함을 얻을 수 있는 그 자체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던 예전 그때 그 감각이 올올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선생님의 눈길이 머문 그곳, 경험했던 것, 그리하여 느꼈던 바들,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이어가길 바라는 가치관을 담아 놓은 만큼 우리 아이도 조금 더 자란 후에 읽어 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시대상과 사진들, 가족, 이웃 등 세상을 구성하는 꼭 필요한 것을 관조하는 선생님의 시선에 70년대에 태어나 어느새 나이가 들어 중장년을 맡고 있는 X세대로서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짙은 향수가 배어들며 좀 더 어렸던 시절로 돌아간 듯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오늘을 투영하는 통통 튀는 젊은 작가들의 글도 사랑하지만 세월을 보듬으며 지난 추억을 함께 소회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듯, 뭐든 퍼주는 정이 많은 선배를 만난 듯 복받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만날 수 있어 독서 내내 행복했었습니다. 선생님, 영원하시길.

스팀 난방의 양옥, 현대적인 정갈한 부엌,

일류 음악회의 3천 원짜리 좌석을 예사롭게 예약할 수 있는 소비 생활 등등

나는 내 이런 공상이 모피나 보석에까지 도달하기 전에 용케 자제를 한다.

문득 남편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내가 남편에게 바라고 있는 것과의

엄청난 간극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래서 초겨울 밤은 실제의 기온보다 조금쯤 더 춥다.

「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