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내 운명 이야기 - 명운을 바꾸는 선택과 변화의 순간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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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책 제목과 부제만으로는 그리스 비극이 이 책의 소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떠올리지 못할 듯 하다. 그래서, 오히려 반전감이 들기도 한다.

내게 있어 이 책의 장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 비극. 또 하나는 명리학. 이 두 개 영역의 공통점은 아마도 오래된 인류문화유산이고 잘 모르고 죽는다면 충분히 아쉬울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크레온이 포고령을 전하면서 엄격한 집행을 도와달라고 하자

원로들은 마뜩잖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 짐이라면 좀 더 젊은 사람들에게 지우시지요."

이해자지만 동의하기 어렵고, 반대는 하지 않겠지만

적극 나서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합당한 법과 명령이라도

국민감정과 상식에 어긋나면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통치자로서 크레온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다.

297쪽

내 부족함. 내 주위 사람들의 한계. 내가 속한 조직의 문화. 우리사회의 모습. 이런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내 자신을 반성하게 해 주는 이 책이 감사하다고 느꼈다.

특정한 행동 하나하나의 잘잘못에서 벗어나 더 크고 넓은 관점으로 도대체 그 사람은 왜 그런 언행을 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 명리학이 주는 밝은 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이치 같은 것.

갈등 영역을 다루다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고 그 속내 그러니까 입장 이면의 실익이나 이해관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정답'과는 무관하더라도 당사자끼리 어떤 합의를 이루면 그 자체로 성취로 보는 이론을 접하게 된다.

명리학. 사주. 운명. 그리고 이것의 극복과 변화. 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사람 참 안 변한다" "태어난 생겨먹은 대로 죽을 때까지 직진한다"는 진부한 명제가 오히려 현실의 대부분이라고 여겨진다.

크레온같은 사람, 안티고네같은 사람에게 소통을 기대하기 힘들다. 죽음 또는 죽음같은 큰 계기를 겪고 나서야 아니 그런 것을 겪고 나서도 그저 그 운명은 그대로 직진이 아닐까 한다.

밖에서 변화를 시킬 수는 없다. 언제나 내부에서 스스로 변해야 한다.

어제 언쟁을 두 번이나 했다. 머리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서너개 떠올리지만, 어쨌든 그 상황에 휘말린 나 역시 그 수준에서의 다툼 당사자에 불과하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난 어떻게 행동할까? 내 타고난 천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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