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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아빠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1
츠카하라 요이치 지음, 채다인 옮김, 우스이 요시토 원작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평점 :
<크레용 신짱>의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가 타계한지도 10년이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짱구와 친구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는데요. 어린이를 위한 만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성인 취향의 개그물로 시작했는데, 연재 중인 잡지사가 망해서 잡지사를 여러 번 옮긴다거나 하는 사정도 있었고, 어쩐지 노하라 히로시와 미사에의 장난꾸러기 아들인 신노스케(우리나라에선 신짱, 짱구.)가 인기 만점. 그리하여 엄마 아빠의 은밀한 성인 개그에서 신짱의 에피소드로 바뀌면서 전 연령층이 볼 수 있는 만화로 바뀌었습니다. - 애들이 보면 몰라도 어른이 보면 알 수 있는 코드가 숨어있기도 했다는 건 아이들에게 비밀입니다. 쉿.
연재가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우여곡절들도 있었고, 작가 사망 후엔 작가의 딸들과 어시스턴트들이 제작한 '신 크레용 신짱'이 나왔는데요. 일상 에피소드를 담으며 여전히 인기가 좋습니다.
원래의 주인공이었던 노하라 히로시, 짱구 아빠는 늘 아들과 딸에게 치이고, 아내에게 야단맞기 일쑤이지만, 알고 보면 무척 대단한 스펙의 소유자입니다. 명문 와세다 대학을 나왔고, 땅값 비싼 일본(도쿄 혹은 그 인근)에서 2층 단독 주택을 소유하고 있어요. 후바타 상사 영업 제2부 계장, 연봉은 650만 엔, 키는 180 정도. 우리나라 만화 캐릭터 중에서도 이 정도 스펙을 가진 분이 있죠. 고길동 씨(둘리)라고요.
아무튼, 노하라 히로시는 가히 명언 제조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꿈은 도망가지 않아, 언제나 도망가는 건 나 자신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같은 것들도 있지만 어쩐지 머릿속에선 "똥 먹는데 카레 이야기하지 마!"가 먼저 떠올라요.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1> 권말 특별 수록 신 크레용 신짱 6권 vol.110 의 에피소드를 보면 먹고 싶은 음식을 항한 짱구 아빠의 집념이 드러나는데요. 웃을 수만은 없는 점심시간의 비애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몇 번씩 겪어보았을 겁니다. 어지간하면 같은 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달리 일본은 점심시간에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게 보통이라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요. 히로시 역시 점심시간이 되면 오늘은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1> 의 제1 화 돈가스 덮밥을 시작으로 카레, 회전초밥, 스테이크, 햄버거 등등... 후배와 팬케이크를 먹으러 갔을 때는 황당하고 웃겼습니다.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식문화를 보여주는 건 <고독한 미식가>와 닮아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우스이 요시토의 '노하라 히로시' 캐릭터를 가지고 츠카하라 요이치라는 작가가 새로 그려낸 먹방 외전이지만, 원작의 느낌과 향을 제대로 끌어오지 못했습니다. 외모와 성격만 짱구 아빠와 닮았을 뿐 아주 닮은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크레용 신짱의 매력은 배경조차 별로 없는 간결한 묘사, 스크린 톤조차 쓰지 않은, 펜 선만으로 그려내지만 대충 그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만화라고 생각했는데요. 이 만화에선 펜 선과 톤이 지나칩니다.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그런 점에서도 실패입니다. <미스터 초밥왕>,<중화 일미>,<맛의 달인>,<신장개업>,<밤비노>등의 요리, 음식 만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음식을 맛있게 그리기 위해 정밀묘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만화가 가지는 매력, 데포르메와 표현력이면 충분하거든요. 이 만화에서는 음식, 배경,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를 지나치게 많이 했습니다. 짱구를 버려두고 별개의 만화라고 생각하면 크게 불만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짱구 아빠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식사를 엿보고 싶었기에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이죠.
다만, 1권의 초반보다 후반이 안정적인 걸로 보아 다음권인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2>는 좀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