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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넘 타운 ㅣ 기업소설 시리즈 9
니레 슈헤이 지음, 김준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평점 :
경영, 경제를 전혀 모른다고 했지만 저는 타이쿤이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깁니다. 소소하게는 음식점 경영부터 나아가선 부동산 운용이나 건설, 더 크게는 도시 전체를 만들어 가는 걸 좋아합니다. 음식점 경영 시뮬레이션은 제한된 시간 안에 고객의 니즈만 충족 시키면 되고, 부동산 게임은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물건을 사고팔아 현금을 많이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심시티 같은 게임이라면 문제가 다릅니다. 무척 다양한 각도로 시 전체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죠. 최근엔 모바일 심시티도 해보았는데요. 머리가 아프고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동반하지 않고 인앱 결제만 유도하길래 그만두었습니다. 가상의 도시를 운영하는 것도 보통이 아닌데 실제의 도시 혹은 마을을 책임진다는 건 대단한 일이겠죠. 리셋할 수도 없고 에디터를 통한 치팅도 할 수 없잖아요. - 자기만 쏙 빠져나가는 식의 리셋을 꾀하거나 일반인은 생각도 못할 치팅을 하는 거 같긴 합니다만.
그렇지 않고서야 비효율적인 짓을 할리가 없지 않나요. 무소용인 건물이나 홍보관을 세우거나 이상한 랜드마크에 억대 돈을 쏟아붓는 그런 짓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초(町: 일본의 행정구역) 장이 된 야마사키 테쓰로가 초를 돌아볼 때 저도 함께 한숨을 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아도 비슷한 꼴을 여러 번 보았으니 말입니다. 야마사키 테쓰로 이름이 나와서 말인데요. 이 남자는 종합 상사인 요쓰이에서 식료 사업본부 곡물거래부 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어처구니없는 일로 진급의 길이 막힌 것도 모자라 퇴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만 마침 고향의 친구가 초장으로 출마해달라는 부탁을 술김에 허락하는 바람에 결국 미도리하라 초 초장이 되어 인생 역전인지 막장인지 아무튼 그런 것에 처하게 된 비운 - 혹은 행운의 남자입니다. 마지막까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으므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습니다. 지자체의 수장이라면 대단한 일인데 - 얼마 전 저희 동네 이장 선출 때도 열기가 대단했거든요.- 어째서 불운이니 행운이니 하느냐면, 이 마을은 1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채를 지고 있는 대책 없는 곳이니까요.
장점을 찾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만 합니다. 어느 누구도 망해가는 마을의 초장이 되려 하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야마사키에겐 쓸모없는 공공건물들도 살리고 지역 경제도 살리는 묘안이 떠올랐으니 그건 바로 '실버타운'의 유치였습니다.
지금은 실버타운 입주 비용이 일반인에겐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금액이라는 걸 알기에 포기했지만 만일 합리적인 수준의 타운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어 하실지도 모르는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실버타운엔 친구도 많을 테고, 문화 센터도 있을 거고, 봉사할 곳도 있을 테고, 텃밭 같은 소일거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비도 노인장기요양보험공단에서 지원을 받는다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자식은 역시 많아야 부담이 덜어진다는 걸 깨닫게 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노인의 거취나 의료복지 쪽에 눈이 갔는데, 초장이 된 야마사키는 모두를 살리는 방법으로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기존과 차별화된 실버타운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이게 어디 하고 싶다고 추진하기만 하면 쭉쭉 진행되는 기획이겠습니까. 더욱이 150억이라는 빚이 있는걸요. 150억 원도 아니고 150억 엔인데.
제주 역시 거액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바로 어제 23년 만에 1321억 원을 모두 상환하여 빚이 없는 지자체가 되었습니다. 만세. 2010년에 5724억이었던 걸 7년 만에 전부 상환했다니 칭찬할만하지만 재정을 메꾸는 쪽으로만 방향을 잡은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제가 제주에 입도한 것도 2010년인데, 제가 지내온 7년 동안 도민의 삶이 윤택해졌나 하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 아, 내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이 시작됩니다. 그건 또 칭찬하고 감사합니다.
어쨌든. 야마사키 같은 기획을 내고 거의 모든 이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정녕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일까요. 야마사키의 경우엔 방해요소나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었던 걸까요. 아무리 뜻이 좋고 열의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의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나서는 이들도 있을 테고 적극적으로 이권을 챙기는 이들도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는 좀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나 합니다.
기업소설이라는 분야는 생소했기에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나 괜한 고민을 했더군요. 활자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흘러가는 걸. 제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사회파 소설보다는 좀 더 논리적이며 현실에 가깝게 흐른다는 차이 정도만 있을 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