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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잔잔하게 시작됩니다. 일상에서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면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일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 소설 <마쉬왕의 딸> 전체를 생각한다면 아주 평범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4살의 소녀를 납치해 13년간 감금한데다가 그 사이에 아이까지 낳게 하여 가족'처럼' 살았던 남자가 체포되어 수감되어있던 중, 교도관을 죽이고 탈옥했다는 게 전부거든요. 스릴러나 미스터리 같은 곳에선 흔한 설정이잖아요. 이 정도는. 그의 딸 헬레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아이와 남편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킵니다. 보통의 인간이 아닌 아버지를 잡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합니다. 헬레나는, 나는 '마쉬왕의 딸'이니까요. 크레센도 에다니만도.(crescendo ed animando)
전기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용맹한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어린 소녀 헬레나는 그들의 늪지대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를 읽고 또 읽으며 막연하게 외부 세계를 그려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세상도 충분히 넓었기에 특별히 탈출을 꿈꾸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다섯 살 생일날 가까스로 재료를 찾아내어 케이크를 구워주려 했던 엄마보다도, 벌로써 우물에 갇혀 죽을 뻔한 그녀를 밤새 품어주어 살아날 수 있도록 했던 엄마보다도 자신을 가둬두고, 가끔은 족쇄도 채우던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가학적이고 폭력적이었음에도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옳은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를 떠난 후 어른이 된 지금 바른 태도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된 건 스스로의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기력해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없었던 엄마와 폭력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양육의 바른 태도를 배울 수 없었을 텐데도, 어른이 된 헬레나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으로 잘 돌보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남편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으로 돌아온 후, 성장과정이 많이 비추어지지 않았지만 조부모의 행동을 보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타샤 캄푸쉬의 경우도 3096 일 동안 힘들었던 것 이상으로 세상으로 돌아온 후 힘들어했으니까요.
어머니의 학습된 무기력은 아버지가 2주 동안이나 집을 비웠을 때에도 아이를 데리고 달아나거나 혼자 달아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어린 헬레나가 볼 때에는 얼마나 하찮아 보였을까요. 아버지는 헬레나를 데리고 다니며 사냥하는 법, 피를 빼는 법 같은 전사로서의 소양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단순히 육체적 보호자(그녀가 보호를 받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배자였습니다. 완전히 통제된 생활에서 반항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자라 하면 자야 했고 먹으라 하면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헬레나는 길들여졌고, 그런 것에 익숙했습니다. 늪지대의 지배자인 위대한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남는 길이었습니다. 폭포 인근에서 우연히 다른 가족을 목격한 후 이매지너리 프랜드가 생기기 전까지는요. 그들은 헬레나가 태어나 처음 본 타인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리고 늑대 사냥에서 돌아온 날,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물 속에서 있었던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나는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둘째, 아버지는 내가 안전한지, 내 마음이 어떤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이다. 셋째, 어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에게 무관심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 세 가지는 아주 큰 깨달음이었다.
-p. 257
과거의 헬레나와 현재의 헬레나가 처음엔 부드럽게, 조용히 움직이더니 이윽고 급하고 강하게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독자인 내 머릿속에서는 열몇 살의 헬레나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른 남짓의 헬레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후에 마쉬왕이라 불리게 된 남자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했습니다. 잔인하고 나르시시즘으로 뭉쳐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헬레나에겐 애정 어린 행동을 했을까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도 자기 새끼는 아낀다는 글이었는데요. 그건 부성애나 모성애 같은 애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날이 온다면, 가차 없이 내다 버릴 수 있다는 거죠. 마쉬왕도 헬레나를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가 헬레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헬레나가 아버지를 떠났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죠.
직간접의 피해자였던 그녀는 훌륭한 '전사'였고, 그 전사를 길러낸 건 다름 아닌 '아버지'였습니다. 그녀가 아버지를 떠날 준비를 한 건 무리의 알파가 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알파는 무리의 유일한 암컷을 지켜야 했습니다. 야생의 본능과 인간의 마음이 뒤섞인 그녀는 본능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아버지가 실은 납치 강간범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파는 무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아버지를 사냥하려는 이유입니다.
크레센도 수비토(crescendo sub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