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파는 가게 1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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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을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던 영화가, 드라마 시리즈가, 소설이 스티븐 킹의 것이었던 걸 몰랐던 시절부터 스티븐 킹을 좋아했습니다. 문화 개방으로 일본 소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까지 제가 접했던 공포물의 대부분은 그의 것이었을 겁니다.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제 기억력은 그런 것입니다. 어떤 계기로 봉인이 풀리지 않으면 좀처럼 미리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하찮은 것이지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 닫아 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꽉 막히고 답답했던 시절,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라는 섬이 물 위에 떠 있는 감옥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 저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었습니다. 요술봉을 휘두르며 변신할 수 있는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때로는 파괴적이고 기이하고 기묘한 것, 낯선 것, 이질적인 것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 사이에 스티븐 킹이 존재했습니다.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한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먹으며 자라났습니다. 실은, 자신 없습니다. 스티븐 킹의 책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서점가에 풀렸는지 모르거든요. 제 공상의 세계에 자리 잡은 그가 스티븐 킹인지 아닌지 불확실하지만, 환상특급만큼은 기억하고 있으니 그가 아주 중심에 있지 않더라도 분명 어딘가에 서 있긴 할 겁니다. 

그래요. 저는 환상특급을 무척 좋아합니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 방영되었던 환상특급 말이에요. 글을 쓰면서 다시 불안해졌습니다.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에 호시 신이치가 있다는 건 확실한데, 환상특급에 스티븐 킹이 있는 건 확실한가요? 누군가 답해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글을 계속 이어봅니다. 당시 환상특급의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몇 개의 에피소드는 단편적으로 떠오르는데요. 그마저 확실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저는 뭘 기억하는 걸까요. 환상특급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좋아했던 거죠. 직접적으로 무서운 것이 튀어나와 겁을 주는 전설의 고향 타입의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신기한 이야기, 왜 무서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성대의 오른쪽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 그런 다양한 것들이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이미 일상이 다른 이들과 다른데, 더 다른 것들과 함께하면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던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떠나 다른 세상을 꿈꾸며 지금의 세상도 현실이 아니라 믿고 싶었던 것인지.... 맞아요. 저는 괴로울 때면 여섯 살 때 서울발 부산행 열차를 타고 가는데, 아빠가 아직 깨우지 않아서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일들은 꿈이니까, 나중에 아빠가 깨워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도피했었죠. 지금은,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다시 겪는 건 정말 싫거든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살아갈 거라 믿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 
<악몽을 파는 가게 1>의 '사후 세계'에 등장하는 윌리엄 앤드루스처럼요.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죽어갈 때쯤이나 죽은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나 봅니다. 반성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그 반성을 도와줄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저런 놈은 구원받지 말아야 하는데 싶을 때도 있어요.  만약 '어느 못된 꼬맹이'에 나오는 정말 못된 꼬맹이 같은 놈이 진짜 존재한다면요. 그놈에게 인생 전반에 걸쳐 괴롭힘당한 끝에 악마 같은, 아니 악마라고 생각되는 그놈을 죽인 죄로 사형수가 되어버린 사람이 나라면 나는 그놈의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끌고 갈 텐데. 그는 죽어가면서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억울함을 호소한 걸로 치자면 이 사람도 빼놓을 수 없죠. '죽음' 에피소드의 짐 트러스데일 말이에요. 어린 여자애가 죽은 현장에 자기 모자가 있었다고 범인으로 몰리다니. 저는 그의 이름 트러스데일을 트러스트 테일(trust tale)로 읽는 바람에 - 범인으로 지목된 건 흑인이기 때문이다. 저렇게 정직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다니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 같으니라고!라며 분개했습니다. 게다가 그가 훔쳐 갔다던 소녀의 은화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 은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범인은 돈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그가 사형당한 후 발견되긴 하는데... 돈 때문에 비양심적인 일을 한 부부의 이야기도 읽었는데요. '도덕성'이라는 에피소드에서요. 살인교사도 아니고 자살방조도 아니고... 묻지 마 폭행 사주라니. 세상에 별 희한한 일이 다 있죠. 20만 달러라면... 음. 저라면 안 해요. 무언가를 저지르기엔 부족한 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얼마 주면할 수 있겠냐고요? 시간 좀 주실래요? 안된다고요? 그럼 안 할래요. 뭔가를 저지르려면 모름지기 신중해야죠. 저지르고서 백만 년 동안 고통스러워할 거라면 안 할래요. 그러니 시간 좀 주세요. 
나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절대 하지 않는다고 쓰고 싶은데, 양심이 허락하지 않네요. 선한 사마리아인은 될 수 없더라도 그 정도의 원칙은 세워도 좋지 않을까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건 위험 요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아라 하는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 <악몽을 파는 가게 1>의 맨 처음 에피소드 '130 킬로미터'에서는 그만, 잡아먹히고 말거든요. 문 닫은지 오래된 패스트푸드 가게 옆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낡은 스테이션왜건을 보고 도움을 주려고 접근한 게 화근이었죠. 휴대폰 있는 세상이니 경찰에 도움 요청만 해도 좋으련만. 직접 도와주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을 - 그러니까 친절하고 착한 사람을 잡아먹는 못된 자동차라니!!!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님을 우적우적. 어린아이들과 괴물 차의 대치 상황이 긴장감 넘칩니다. 혹시 저 차가 움직여서 아이들에게 달려들면 어쩌나 걱정되었죠. 자동차에 대한 걱정은 저만 한 게 아니에요. '우르'라는 에피소드에서의 웨슬리도 그랬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크레마 같은 전자책 리더기 킨들을 주문했던 그에게 도착한 핑크색의 기기는  그에게 평행우주의 다른 세계에서 활동했던 유명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놀라운 경험에 취해있던 그는 미래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거금을 투자 - 했지만 다른 우르의 웨슬리가 지불했겠죠. 본인의 카드에서는 돈이 나가지 않았으니까요 - 하여 근미래의 기사를 읽습니다. 한 만취 운전자에 의해 사랑하는 이와 그녀의 학생들이 다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웨슬리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그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이었을까요. 

<악몽을 파는 가게 1>의 매력은 다양한 환상의 세계로 저를 데려다주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스티븐 킹 자신이 논평을 달아두었는데, 그게 무척 매력적이에요. 짧은 평을 읽고서 에피소드를 읽고 난 후 다시 평을 읽으면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가를 제대로 알 수 있거든요. 그런 게 참 좋았습니다. 책에는 제가 언급하지 않은 단편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모든 걸 다 쏟아붓는다면 글이 너무 길어질까 봐 염려스러웠어요. 게다가 숨겨두는 맛도 있잖아요. 기뻐요. <악몽을 파는 가게 2>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포와 환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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