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머니 밀리언셀러 클럽 148
로스 맥도날드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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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은 치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데 아무래도 수상하다며 조사를 부탁했습니다. 참 이상하죠. 남자들은 왜 나랑 헤어지는 건 괜찮지만 그놈만은 안된다고 말하는지. 어느 정도의 자존심을 지키며 그녀가 떠나는 걸 막고 싶어서 그런 대사를 하는 건가 싶지만, 피터 제이미슨에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렴 어때요. 탐정 루 아처의 입장에서는 피터의 약혼녀 버지니아를 유혹한 마텔이라는 자칭 프랑스인의 뒷조사를 하고 그의 정체에 관한 것만 알려주면 되는걸요. 


지적인데다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돈도 많은 마텔이 뭐가 부족해서 (사실은) 부유하지도 않은 버지니아를 꾀어 낼까요. 물론 그 지역 최고의 미인이라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요? 미모를 무기로.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담배연기 뿜어내는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특히 좀 오래전 배경의 스토리에서는 그럴 것 같은데요. 모든 건 잘 조사하고 캐어내 보아야 알 수 있는 법. <블랙 머니>의 루 아처는 마텔의 정체를 캐기 위해 여러 사람과 접촉합니다. 심지어 그가 정말로 지적인 프랑스인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그 방면의 권위자인 대학교수에게 기출문제까지 부탁했는데요. 마텔은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피터의 질투심으로 인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습니다. 희한하게 7년 전에 바다로 걸어들어가 자살해버린 버지니아의 아버지 로이 문제랑 자주 마주치더란 말입니다. 마텔의 정체를 캐는 것도 중요하지만 - 아처의 생계가 달렸으니까요 - 자꾸만 따라붙은  로이의 죽음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사건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아 무언가 손에 잡힐 것 같은 순간, 마텔을 추적하던 또 한 명 헨리가 부상당한 채로 발견되고, 버지니아의 엄마가 살해당합니다. 도대체 이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게 무엇이기에 평범한 애정문제인 줄 알았던 사건이 이렇게 커져버렸을까요. 마텔이 들고 있던 바로 그 '돈'때문이었을까요.


아마 돈 문제가 맞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목이 <블랙 머니>일리 가요. 아시겠지만 블랙 머니는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돈을 말하는데요. 금융 실명제를 하고 있음에도 본인 명의가 아닌 통장 개설을 할 수 있다는 걸 얼마 전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뭘 위한 금융 실명제인가 싶어요. 우리 같은 일반인은 통장 하나 만들려면  근거 자료를 가지고 가야 개설할 수 있는 거 아시나요? 관리비 이체용이면 고지서, 스쿨뱅킹 용이 면 고지서, 청구서 이런 걸 가지고 가야 해요. 그렇지만 뭔가 뒷배가 있는 사람은, 만들더군요. 지점장하고 호형호제하는 사이면 발급되나 봅니다. 뉴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올 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도 그런데 1960년대에는 어땠을까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블랙머니가 잘 돌아다니고 있었겠죠. 돈 세탁을 거치면서 말이에요. 우리나라가 보통 정치 경제 비자금이나 금융범죄자금을 합법 자금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라면, 서구에서는 무기, 마약 밀매 자금 같은 것이 세탁된다고 하는데요. 그 규모가 보통이 아닐 것 같습니다. 돈 세탁이라는 말은 재미있게도 알 카포네의 범죄 자금을 세탁소에서 합법 자금으로 전환시켰다는 데에서 왔다고 하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과연 블랙 머니를 어디서 세탁했을까요. 1920년대 알 카포네의 시대가 아니니 세탁소는 아니겠죠. 힌트를 드릴까요? 버지니아의 아버지 로이는 마텔 등장 7년 전에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속 빈 강정으로 잠시 세상에 머무르다 죽었는데, 로이의 아내이자 버지니아의 엄마인 마리에타의 말을 빌리자면, 친척이 물려준 유산이나 팔 수 있는 집이나 땅이 예전엔 있었지만 18년 결혼 생활 동안 거의 100만 달러를 날려먹고 - 600만 불에 사이보그를 만들 수 있던 시대였는데!- 셋집에다가 더 이상 죽을 친척도 없게 되었다지요. 그리고 결국 로이 스스로가 죽었다는데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집안에 도박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더 이상의 하강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근근이 살아가야 했습니다. 마리에타의 근근이 와 제 근근이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저라면 부유한 동네에서 체면치레하느라 고생하느니 그냥 평범한 동네에서 평범하게 사는 걸 선택하겠습니다. 마리에타를 만날 수 있었다면 그렇게 권유해 봤을 텐데. 자신의 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째서 마텔을 따라 떠난 건지 - 동네에서 제법 잘 사는 피터를 버리고 말이에요 - 알았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랙 머니>는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3대 거장 중 한 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대실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저 역시 엘릭시르의 <소름>에서 만나보지 않았더라면 그를 몰랐을 겁니다. 사실 저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하고는 잘 안 맞아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매캐하달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하드보일드와는 잘 안 맞죠.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은 좋아하지만 커글린 가문 3부작은 좀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는 저랑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절대로 명탐정 코난 단행본 39권 표지 안쪽 날개 '코난이 찾은 명탐정 시리즈'에 루 아처(료 아처)가 소개되어있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네, 절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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