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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친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2월
평점 :
좋아하는 셰프, 고든 램지가 카스 맥주 광고를 찍었다는 뉴스를 보고 덕력 상승으로 인한 맥주 섭취 욕구 상승으로 마트로 가 두 캔을 사 왔습니다. 오래전 동생으로부터 음료에는 안주를 먹는 게 아니라는 충고를 들은 후론 맥주엔 안주를 먹지 않습니다. 치맥이라니. 콜맥과 같은 맥락으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니까. 음료니까요. 그 당시 주량이 소주 3병이거나, 발렌타인 한 병이었는데요. 제 주량이라는 건 취하기 시작할 때까지를 말합니다. 정신이 혼미하거나 판단력을 잃을 때까지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울하거나 슬플 때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 녀석이 나를 삼키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나는 나여야만 하거든요. 그 원칙 때문에 술을 제대로 마셔본 지 십 년도 더 되었습니다. 온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도 버거웠으니 술 따위가 내 옆에 올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호프 발효 음료 355 ml에도 취기가 오르려고 하는 재미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술과 친구하고 지냈던 과거 십여 년은 술친구도 많았는데, 외로웠던 저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가시 오가피주만 빼고 온갖 가지 대중적인 술을 죄 흡입하는데 남자와 마시는 술이 더 즐거웠습니다. 술값을 내줘서가 아니라 적어도 집적거리는 놈들이 없어서였죠. 여자끼리 술을 마셔도, 여자 혼자 술을 마셔도 다가오지 마시라. 지금 그대로의 분위기를 즐기는 중이니까. 술값없으면 애초에 술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빈대떡 신사도 아니고. 나는 취하지 않으니 너희의 보호도 필요 없으니 저리 가. 오빠가 술을 사주겠다는 둥, 취한 거 같은데 택시 잡아 주겠다 등등 헛소리는 관두시게나.
아멜리 노통브는 저와는 정반대의 술 성향을 가졌나 봅니다.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니 방해되는 안주라거나 쓸데없는 수다는 싫다고 하는 걸 보면요. 특히 샴페인을 사랑하는데, 샴페인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금식도 불사합니다. 출판사에서 그녀에게 사과할 일이 생겼다면 고급 샴페인을 선물하면 좋습니다. 웬만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인세를 털어 샴페인을 마시는 그녀에게 한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함께 샴페인을 마실 친구였는데요. 1997년 자신의 책 <사랑의 파괴(1993년작)> 사인회에서 그녀의 팬이자 편지를 주고받던 페트로니유와 만났습니다. 그녀가 평생의 샴페인 친구가 될 줄이야.
첫 만남 4년 후 페트로니유 역시 소설가가 되었고, 정반대 성향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죽이 맞는 그녀들은 샴페인이라는 매개체로 위태로운 우정과 삶을 이어갑니다. 술이 들어가도 기본적인 예의나 소양을 갖춘 아멜리와는 달리 페트로니유는 무척 자유롭습니다. 프랑스 영화에서 보았던 보이시한 캐릭터가 생각났습니다. 아멜리와 페트로니유의 이야기를 읽다가 내 옷 색과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그보다 더 연한 하늘을 바라보는데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Paroles, Paroles 가 흘러나왔습니다. 비현실적인 풍경과 떠다니는 음악 속에서 어둡고 눅눅한 파리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글을 써서 먹고살기 힘든 건 우리나라 작가뿐만이 아니었군요. 인세가 나오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던 페트로니유가 갖은 생동성 알바에 지원해 망가질 정도였으니까요. 그 자존심이라는 게 뭔지. 기꺼이 도와줬을 아멜리에게도, 출판사에게도 손을 못 내밀고 위태로운 길을 걷습니다.
<샴페인 친구>는 이제까지 읽었던 노통브의 소설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개하는 소설도 쓰는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쿵! 그럼 그렇지.
왠지.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