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교수의 밤
다그 솔스타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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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여 불안증에 시달리던 저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흐름에 몸을 맡기며 그렇게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아도 되나 싶은데 생각을 할수록 점점 불편한 상태가 되어 오히려 일을 망치기에 필요할 때만 생각이라는 걸 하기로 했습니다. 되도록 빠른 결정을 내리고, 저의 우유부단함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미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으니 지금의 결정 그대로 계속 밀고 나가자며 일단 실행 한 후에는 다시 생각을 멈춥니다. 제가 평소에 생각이라는 걸 하는 때는 책을 읽고, 기록할 때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가 하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오만 생각이 다각도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벌써 심장이 두근거리고 장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납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빨리 해치워버리고, 그렇지 않으면 빨리 포기를 해버려야 편안합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같은 고민을 반복하는 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거든요. 세상에 고민 없이 사는 법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행동해서 처리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건 해버리면 되고, 행동해도 처리할 수 없는 건 고민해도 해결이 안 되니까 고민하지 말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관한 기우는 버리고. 그런 걸 책에서 배우기 전까지는 온통 고민 투성이었기에 몸의 여기저기가 무척 아팠었습니다. 지금은, 그래요. 노화로 아픈 것 뿐이겠죠.

저같이 필요할 때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늘 철학 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그 솔스타의 <안데르센 교수의 밤>에 등장하는 안데르센 교수가 바로 그런 사색하는 사람인데요. 저명한 문학 교수인 안데르센 교수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크리스마스의 의미라거나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사색하다가 우연히 건넛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합니다. 아니, 남자가 여자의 목을 조르는 걸 본 교수는 철석같이 살인 사건이라고 믿고 있지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인 제 견해로는 살인 사건은 아니고 가정폭력의 장면을 목격한 건 아닐까 합니다. 교수가 목을 조르는 걸 목격한 후 커튼이 닫혀서 그 뒤는 알 수 없거든요. 아무튼 살인 사건을 목격한 교수는 재빨리 경찰에 신고를... 왜 안 할까요? 갑자기 건넛집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사색합니다. 신고를 안 해요. 차라리 오해한 걸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는데, 살인 사건이 분명하다고 믿으면서 신고를 안 합니다. 밤에도 사건이 신경 쓰이고, 다음날 친구 집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너무 지적이라 제가 졸고 만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에도 문득 사건을 떠올립니다. 친구에게 말해 볼까 입이 근질거리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새해를 맞이해도, 그 일은 문득문득 떠올라 생각의 꼬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얼른 신고를 하면 좋을 텐데 여전히 신고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몇 달이 지나 신고하는 것도 우습지 싶은데요. 그러다 문제의 - 살인자라고 여겨지는 - 남자 헨리크 노스트륌을 우연히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며 몸서리칩니다. 뭘까요. 제가 볼 때는 교수도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본다면 - 교수님은 모르나 본데, 이 사람은 아직까지 문제가 없는데요.

교수는 신고하는 일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신고하지 않는 핑계를 지적으로 대는 거죠. 이른바 지식인의 변명입니다. 어쩜 이렇게 생각을 깊고도 많이 하시는지. 내면에 대한 고찰이 너무 심해요. 보통 문학이 그렇지만, 이 소설은 특히 한 호흡이 무척 깁니다. 호흡 곤란이 뇌에 영향을 미쳐서 산소 부족으로 졸렸어요. 어쩌면 전날 잠을 별로 못 잔 탓일지도 모르지만요. 내 수준은 여기까지인 건가 좌절했지만 생각하기를 멈추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자리를 옮겨 다시 읽으니 오! 읽을 수 있었어요. 환기의 문제였나 봐요. 

살인사건의 목격으로 시작된 소설이고 주인공의 신경은 오롯이 그 일에 가 있는데 이렇게 평탄하고 밋밋할 수가 있나요. 주인공은 바짝 긴장해 있는데 반해 저는 담담하게 읽고 있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은가요. 특히 문학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잠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200여 페이지의 책을 정복하는 기분으로 읽을 줄은 몰랐어요.

철학하고 사유해야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 중량의 가벼움에 반해 집어 들었다가는 내용의 무게에 깔릴지도 모릅니다. 주의하세요.

** 책 정보를 읽어보니 이 책은 무척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군요.
** 저에겐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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