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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평점 :
우리나라에도 만남 사이트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2000년 전후에 채팅 프로그램이 무척 유행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세이 클럽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친한 친구가 있는 방에 들어가서 채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제목에 이끌려 들어가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한때 세이 클럽 음악방에서 CJ(사이버 자키)를 했었는데 그땐 참 재미있었지요. 온라인에서만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오프모임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채팅이 점점 이상하게 변질되더니 원조교제의 장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사람들이 그렇게 만나서 관계를 갖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이미 저는 채팅에 흥미가 없어졌기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소설 <리카>에서는 만남 사이트를 이용하다가 된통 당하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처음엔 괜찮았어요.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해 많은 여자들과 메일을 주고받는 정도였으니까요. 독수리 타법을 쓰는 통에 채팅은 너무 어려워서 메일만 하루에 한 두통씩 교환하곤 했는데요. 아내와 아이 몰래 그런 일을 한지 2년쯤 된 어느 날, 승진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바빠질 테니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는 걸 그만두려 하는데요.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명만 만나보고 그만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이 하필 리카였다니 딱하죠. 리카는 처음엔 괜찮았습니다. 예의도 바르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성격에 애교도 있는 편이고. 그러나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돌변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걸려오는 전화. 받지 않으면 끈질기게 남겨 놓는 메시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이 여자는 안되겠다. 여기서 그만두자고 생각한 순간, 그의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화를 바꾸고 전화번호도 바꾸었지만 리카는 그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첫 만남은, 아아 정말로 무섭습니다. 호랑 작가의 봉천동 귀신보다 무서웠어요. 경찰도 썩 도움이 되지 않아 친구인 하라다에게 연락합니다. 이런 탐정 친구가 있다니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지만, 리카에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웬만한 스릴러나 공포에 별로 겁을 먹지 않는 편이라 불을 끄고 북 램프를 켠 채 <리카>를 읽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너무 강했어요.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의 결말이 너무 끔찍했습니다. 소설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을 주인공의 고통이 무서웠습니다. 이렇게까지 악하고 괴이할 수가. 리카는 순수 악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