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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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기 때 사업에 실패해 좌절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께서 저를 업고 구멍가게를 빌려 장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수유리에 있었을 어느 자그마한 구멍가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게의 마스코트 노릇을 했다고 하는 엄마의 말씀을 들으면 어쩐지 그곳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내다 버린 연탄재를 주워와 방에 불을 때던 엄마는 그때를 추억할 때면 웃으며 고생했었다고 하십니다. 제가 그때를 기억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추억 여행에 동행할 수 있었을 텐데요.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 나오는 구멍가게들의 추억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수유리의 구멍가게 시절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는데, 어째서인지 이모들과 음악다방이니 만홧가게를 드나들었던 기억은 생생합니다만 구멍가게에 갔던 기억은 없습니다. 설마!! 저만 빼고 이모들끼리만 갔었던 걸까요? 제주에 내려와서도 나름 신시가지였던 신제주에서 살았기에 오래된 나무 곁에 독채로 지어진 구멍가게엔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고층 아파트였던 5층짜리 제원 아파트의 상가도 제가 살던 동네의 무슨 무슨 상회도 모두 콘크리트로 잘 지어진 건물에 들어앉아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저런 동네에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까요? 계절마다 다른 빛을 보여주는 나무와 평상이 있는 구멍가게에서 하드를 사 쪽쪽 빨아먹으며 친구를 기다렸다는 가짜 추억이 진짜인양 할까요.

저자인 이미경의 그림이 주는 환상일 겁니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구멍가게의 풍경이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스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날카로운 펜을 가지고 부드럽고 풍부한 표정을 그려내었습니다. 결코 단단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유하지 않은 느낌의 그림에서 떠오르는 은은한 색채는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했습니다.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 저조차 이럴진대 추억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떨까요. 그러고 보니,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 그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저 풍경화로만 보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저와 같은 마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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