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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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는 농아 보호시설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만, 범인은 누구이며 얼마나 잔인한 사건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른바 사회파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인 아라이 나오토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듣고 말할 수 있는 아이, 이른바 코다 (Children Of Deaf Adults)입니다. 자신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에는 이미 가족의 통역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청인과 농인의 사이에서 통역을 하며 가족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고독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족에게서 독립해 나와 경찰서 사무직으로 일할 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인 수화를 버리고 다른 이들처럼 살았습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 농인을 취조하는 현장에서 통역을 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갔던 취조실에서 들리는 사람이었다면 받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처우를 받던 농인을 보며 분개했지만, 아라이는 소극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항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총대를 메고서 으쌰 으쌰 할 법도 하지만, 아라이는 우리 주변의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에게 가족을 만나 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는 있었습니다. 결국 용의자는 실형이 선고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데, 용의자 몬나의 딸이 수화로 남긴 말이 아라이의 마음에 남습니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물음은 철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신을 옭아매 온,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p.90

아라이는 내내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들리는 사람들에게는 농아의 아이이며 어쩐지 대하기 불편한 사람이었으며, 농인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편이 아닌 청인 세계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자신은 과연 어느 쪽일까.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경찰서 내의 일로 인해 실직한 후 이혼하고,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도 과거로부터의 질문에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그랬다.
장례식에 찾아와 준 사람들은 대부분 농인들이었다. 아라이는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교대로 나타나서 진심이 담긴 말을 건네며 위로해 주었다.
 그런 그 사람들도 그가 '들리는 아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한결같이 '아아, 그렇구나.'라는 표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아라이의 곁에서 멀어졌고 어머니나 형에게로, 자신들의 '동지'에게로 옮겨 갔다.
 아라이 주위에는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없게 되었다.
-p.146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규정한다면 바이링구얼인 아라이는 수화 통역사 시험을 보고 통역사일을 하는데, 법정에 서서 통역을 한 후 펠로십이라는 단체에서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옵니다. 이후 농아 보호시설의 원장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17년 전 자신이 취조실에 들어갔을 때 피해자였던 자의 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17년 전 그 농인이었는데요. 미심쩍은 점들에 마음이 쓰인 아라이는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에 다가섭니다.

읽는 내내 외로웠습니다. 코다로 이쪽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움과 어두움이 자꾸만 다가와 슬펐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만들지 못한 것에 슬펐습니다. 이야기는 일본의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의 환경이 그들보다 월등히 나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사회 제도적 접근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인식의 개선이라거나 시선 같은 것은 비슷하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소설을 읽으며 농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의 외로운 아이들에게도 생각이 미쳤습니다. 미스터리 그 자체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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