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
캐럴라인 케프니스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해시태그가 붙어있는 소제목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 소설이 서점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라고 오해했습니다. 소제목을 보고 난 후에도 여느 러브스토리와 비슷한 책이라고 생각했었죠. 작년에 검은숲 출판사에서 흑림귀인단의 선물로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의 굿즈인 접착테이프를 보내주었는데요. 제목과 더불어서 '좋아하는 건 소유해야 하는 거야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이지'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지난달 이사하면서 테이프를 사용하다 보니 궁금해졌습니다. 이 소설이 어떤 책인지. 그래서 읽었습니다. 노란색 표지가 무척 강렬하더군요.

초반 몇 페이지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나'와 '너'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 그 빈도가 무척 심했거든요. 초보자의 흔한 실수처럼 보였지만, 전체적인 문장으로 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꾸 그렇게 표현을 하는 걸까. 원제가 <YOU> 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러니 계속 You가 나올 수밖에. '너'는 벡이고, '나'는 조야. 
소설은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의 운영자이자 사이코패스면서 스토커인 '조'의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었지만, 거의 전지적 시점에 가깝습니다. 방금 이야기했지만 조는 아주 뛰어난 스토커거든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것 같겠지만, 우리들도 흔히 저지르는 실수 - 이긴 하지만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는 -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온라인에 올리는 자랑스러운 행위에 의해 조는 스토킹력에 날개를 달수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거의 실시간으로 달리는 현재 자신의 위치나 행동, 트위터에 짤막하게 올리는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 혹은 허세, 이런 것들만 잘 조합해도 뭘 어디서 누구와 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이메일까지 노출되었다면. 

주인공인 조는 학교는 일찌감치 그만두었지만 어릴 때부터 이 서점에서 일하며 꾸준히 책을 읽어온 바,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무니씨 대신 서점을 운영하고 있지요. 어느 날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여자, 벡에게 한눈에 반합니다. 벡은 '나'의 '너'여만 했습니다. 사이코패스인 조는 벡에게 집착하고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착한 남자가 되어 그녀에게 접근합니다. 자신의 폭력성 같은 건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녀의 부탁이라면 모두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걸리적 거리는 것들이 자꾸만 방해합니다. 그는 사이코패스이므로, 걸림돌은 제거해야만 합니다. 마침내 그녀와 무척 친밀해졌다고 생각해 아주 행복해졌을 때, 그는 다시 절망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그의 절망과 실망과 괴로움은 결국 그녀를 삼켜버립니다. 그녀는 '너'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이코패스 성향 중에 남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조는 상대방의 감정을 잘 알아챕니다. 그러니 조를 사이코패스라고 정의해도 좋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강박증, 분노조절 장애, 편집증...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소시오패스라거나. 조는 생각보다 참을성이 강한 남자입니다. 머리도 무척 좋고요. 증거를 인멸하는 실력도 참 좋습니다. 죄책감 없이 던지는 거짓말에 무수한 상처를 받으면서 잘 참아냅니다. 단번에 폭발해서 그렇지. 저는 끔찍한 스토커 사이코패스 조보다 벡이 싫습니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바람둥이. 화자인 조의 시선으로 보는 그녀이기에 얼마나 사랑스럽게 그려졌을까 하는 것까지 감안해서 보았더니 더 싫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에는 성적인 묘사가 무척 빈번하게 나옵니다. 작가의 표현력과 번역가의 실력 덕분에 그런 묘사들이 불편하지 않게(어떻게 불편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불가결한 것으로 잘 스며들어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위들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이코패스인 조의 행동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들의 행동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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