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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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한지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 집 구경을 시켜주었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인상은 무척 강렬했는데요. 혹시 간섭하는 타입이면 어쩌나 하고 신경이 쓰였드랬습니다. 이웃과는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내는 정도가 편한 저는, 친밀감 있는 - 길에서 만나면 수다를 떨 수 있는 - 관계를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폐쇄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긴 하지만, 평소에도 감정 소모를 많이 하고 있기에 되도록이면 마음에 없는 소리,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소수의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있습니다. 참, 좋지 않은 성격이지요.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괜찮은데 오프라인에서는 왜 이리 피곤한 일들이 많은지. 좋은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오다 보니 생긴 병 같은 것인가 봅니다. 신경 쓰였던 이웃집 아주머니는 이사 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습니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아주머니의 드나듦을 느낄 뿐, 대면한 적이 없었기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다른 동네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볼 것 같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녀의 인상을 희미하게 만들었거든요. 집 앞에서 마주쳐야 그분이구나 할 테지요. 만약 제가 외출해있는 동안 비슷한 연배의 다른 분이 이사를 오신다면, 저는 그분이 그때의 그 아주머니라고 생각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옆집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얼굴을 본 적은 없군요. 

당연히 처음부터 이웃에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틈에 스며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요. 게다가 그가 악의 화신이라면.  <크리피>는 그런 분위기로 시작되는 소설입니다. 범죄심리학 교수면서 이론만 확실하고 실제로는 당황하고 마는 다카쿠라는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현직 형사인 노가미의 방문으로 8년 전에 벌어진 일가족 실종사건에 주목하는데요. 그 후 그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노가미는 실종되지, 썸의 분위기가 살살 풍기는 제자는 스토킹을 당하지, 방화로 앞집의 모녀가 사망하고, 이웃의 소녀는 도와달라며 자기의 아빠인 체 하는 사람이 실은 아빠가 아니라고 하소연하지, 그 아빠라는 사람은 식칼을 들고 달려들지... 두뇌형 탐정 역도, 하드보일드 탐정 역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다카쿠라가 뭘 어쩌겠습니까. 그냥 사건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저는 그를 따라서 함께 헤매고요.

책을 읽다가 새벽녘에 잠든 탓에 끔찍한 꿈을 꾸었습니다. 소극장 공연을 준비하던 배우와 스태프가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열었는데요. 스태프 중 하나였던 저는 동료의 도시락에서 바퀴벌레 반 마리를 발견합니다. 심지어 옆 사람이 입을 닦고 버려두었던 냅킨 뭉치에서 더듬이 두 개가 꼼지락꼼지락. 설마 하며 들춰보았더니 바퀴벌레 세 마리가 놀고 있었습니다. 이후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바퀴벌레들. 꿈속에서 바퀴벌레 백만 대군과 전투를 벌여야만 했는데요. 괴이한 꿈의 원인은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을 겁니다.  책의 도입 부분에서 creepy는 '(공포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한'이라고 되어있습니다만, 저는 creep이라고 하면 라디오헤드의 Creep이 먼저 머릿속을 맴돌고, 그 후 벌레 같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을 떠올리거든요. 그래서 그런 꿈을 꿨을 겁니다. 

<크리피>라는 소설의 주된 스토리를 정리해보면 강풀의 <이웃 사람>과 비슷한 공포가 느껴집니다. 크게 교류하지는 않지만 이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악한이었다, 끔찍한 살인마였다, 게다가 그 칼끝은 나를 향해서도 겨누어져 있다.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부분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에는 성공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뭔가 스토리를 끌어가는 방식이라거나 서술 방식 같은 것이 불편했습니다. 지루하다거나 읽기 나쁘다는 건 아닌데 알 수 없는 답답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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