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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평점 :
조이스 캐럴 오츠의 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무언가 오싹하고 끔찍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휘감아 잡아채는 매력, 혹은 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그의 책이 불쾌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건 문장의 노예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몇 권의 책들도 그러했지만, 이번에 읽은 <좀비>라는 책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살인의 기술에 대한 묘사도 끔찍했지만, 더욱 두려웠던 것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그냥 일상 이야기를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버리는 작중 화자,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쿠엔틴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어린 흑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집행 유예 2년의 보호관찰 기간 동안, 경찰과 주변 지인들의 눈을 피해 - 아니 선량한 척 연기를 하며 - 마음속의 욕망을 키워나갔습니다. 나에게 절대복종하는 좀비를 만들자.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명령을 따르며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그런 좀비 말이다.
진정한 좀비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명령과 변덕에 복종할 것이다.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것은 없고 그 뒤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내 좀비는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공손할 것이다. 웃지도 히죽거리지도 못마땅해서 콧등을 찌푸리지도 않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곰 인형처럼 폭 안길 것이다. 우리는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 11월의 바람소리와 음악대학의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종소리를 세면서 같은 순간에 나란히 잠들 것이다.
-p. 245
쿠엔틴은 자신을 'Q_P_'라고 칭하기도 하고, '나'라고 하기도 하며 때로는 '쿠엔틴'이라고 합니다. 모두 같은 사람인 것 같지만,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엔 그놈이 그놈이지만요. 그는 타인의 감정 따윈 개의치 않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얼음송곳을 눈으로 찔러 넣어 전두엽을 파괴해 좀비를 만들겠다는, 지금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하며 고통을 주었는데요. 1940~50년대에 실제로 시행되었던 뇌외과 수술의 한 방법(로보토미)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방식이 유별나거나 독창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끔찍합니다. 피해자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런 것들을 아주 편하게 서술하는 것을 보며 저 자신도 그의 무심함에 물들어버릴까 두렵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이런 식의 결말이라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결말 지음으로써 소설은 현실과 이어져 더 큰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미국의 연쇄 살인마 제프리 다머를 모델로 썼다고 하니 어느 누가 이 이야기를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