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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제가 미취학 아동일 적에, 그러니까 일곱 살 때 외할머니 댁에서 얼마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제주에서 장사를 시작하려고 이것저것 준비 중이셨고, 엄마랑 동생, 그리고 제가 들어가서 살게 되었던 건데요.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인원이 한 집에 살았습니다. 외갓집이라지만 시골의 마당 있는 정겨운 집이 아니었고, 어려서 몇 평인지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30평 남짓 되는 주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이 세 개 있고 거실 주방이 별도로 되어 있는 옛날식 주택이었는데요. 그곳에서 저희 셋과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 두 명, 외삼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방학 때는 지방의 이모도 올라오셨구요. 외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던 기억이 없는데요. 공무원이셨기에 다른 지방에 발령 나서 근무하고 계셨나 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집에 살았을까요? 많은 인원이 한 집에 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1인당 필요한 필수 공간은 5평이라고 하던데요.) 외삼촌은 가출을 자주 했습니다. 저는 외삼촌이 가출하면 무척 신났습니다. 아예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고등학생이었던 외삼촌은 집에 오는 일이 별로 없을 정도였는데요. 집에만 오면 이모랑 싸워서 무서웠습니다. 한 번은 이모가 방으로 도망치고선 문을 잠갔는데요. 외삼촌이 분에 못 이겨서 문을 한 대 쳤습니다. 어이쿠, 문에 커다란 주먹 자국이 남았어요. 하지만 정말로 이모를 때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외할머니가 무척 엄하신 분이라서 아무리 아들아 오구오구 하더라도 누나를 때리는 것까지 예뻐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자라면서 알았는데, 그때 외삼촌은 복싱 선수였고, 가출한 것이 아니라 합숙 훈련을 하고 시합에 나갔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모들이 장난으로 하는 말만 듣고선 정말 그런 줄 알았지 뭐예요.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외삼촌은 무척 순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무시무시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커다란 곰돌이 아저씨가 되어 있었어요. 한때는 볼링을 기술이 아니라 힘으로 제압했던 멋진 오빠였는데요.
도선우의 <스파링>을 읽다 보니 외삼촌 생각이 났습니다. 평탄한 인생길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만은 외삼촌은 복서로서의 인생을 끝낸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이라고 쓰고 사고를 치다라고 읽습니다) 지금은 효자로 살고 있는데요. 잃을 것들을 잃고 나니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생각해도 좋을는지, 외삼촌을 뵌 지 아주 오래된 나이 먹은 조카가 지레 짐작해봅니다. 왜냐하면, 설날이니까요.
<스파링>의 장태주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 불행하게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려다 보니, 그 표현이 맞는 건지 망설입니다. 독특하게 태어났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병원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공중 화장실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엄마는 아이를 자신이 키우겠노라고 선언하고 태주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키우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작중 화자가 태주 자신이니까요. 엄마가 왜 버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보육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게 어떤 건지 저는 압니다. 중학교 때 보육원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엄마가 있는데, 외삼촌도 있는데 그 친구는 가난 때문에 보육원에서 살아야 했고, 학대를 당했습니다. 지급받은 볼펜 한 자루를 잃어버렸다고 철제 앵글로 맞은 다음날 등교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 애는 저 말고도 몇몇의 친구가 더 있었기에 그래도 학교에 오는 게 즐겁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태주에게는 아무도 없었어요. 같잖은 어른의 되먹지 못한 사상이 옮아 있는, 소위 있는 집 아들이 태주가 좋아하던 새를 괴롭히던 날까지는 그랬지요. 그날 태주는 자신에게 잠재 되어 있는 동체 시력과 펀치력을 봉인 해제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습니다만, 중학교 진학 후 또 사건에 휘말려 이번엔 소년원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담임 덕분에 복서의 길을 걷게 되고, 작은 가정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드디어 오롯이 자기 것이 있는 생활을 하고, 목표가 있는 삶을 살게 되는데요.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의 행보도 늘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은 참 희한합니다.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소설이 있는데요. 읽기 버거운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대개 초반이 힘들고 그 고비를 넘기면 후반이 편해지는데 (아예 끝까지 버거워 진을 빼기도 하지만요.) 이 소설은 그 반대에요. 초반의 소년 장태주의 이야기는 정말 술술, 읽다가 쉬기가 아까울 정도로 잘 넘어가요. 태주의 심리에 동화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복서 인생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좀 힘들어집니다. 태주랑 함께 로드워크를 해야 해요. 잠깐 멈춰 서 섀도복싱도 해야 하고요. 좀 쉬어볼까 싶은데 그러면 아예 퍼져버릴까 봐 굳게 마음을 먹고 끝까지 달립니다. 그래서 결국 다 읽어냈어요. 만세!
또 하나, 문체나 흐름의 분위기가 절반, 아까 말한 복서가 될 때쯤부터 달라집니다. 아니 이게 뭐지, 초반의 편안하고 수려함은 어디로 간 거야. 심지어 마주 보는 두 쪽에서 '~데, ~다.'라는 식의 문장 구성이 네댓 번이나 나와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퇴고를 하다가 시간이 부족했나 싶었다니까요...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심사 위원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했네요?
초반의 태주 소년 때문에 그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려고 끝까지 읽어낸 기분입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했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공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스토리는 참, 흔해요. 흔합니다. 무지하게 뭘 막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입니다. 알았다고, 그만 말하라고. 뿐만 아니라 방금 위에서 말한 것처럼 뭔가 좀 그래요. 격정적인 클라이맥스가 없고 넘실넘실 파도가 치는 것 같아요. 눈물을 흘려야 하는 부분에서도 안구는 뻑뻑, 어휴. 얘 이제 어떡하냐... 하는 정도의 감정이었습니다. 뭐야. 이런 소설.
제일 분한 건 뭐냐 하면요.
그런데도 재미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