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 심야 편의점에서 보고 쓰다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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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의 밤은 참 긴장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편의점 사건 사고 소식들. 아르바이트생만 있을 때를 노리는 강도도 있고, 기분 나쁘다고 폭행을 하는 손님도 있다는 이야기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지난달 알바 노조 편의점 모임이 전 현직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들을 대상으로(368명)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무려 67.9%(250명)이 폭언, 폭행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평범하게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결정 장애 때문에 고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아르바이트 생이 서서 대기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미안해하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가 봅니다. 


모두가 잠든 밤, 나무와 돌을 때리는 바람소리와 거친 파도 소리만 들릴 것 같은 애월의 편의점은 어쩐지 낭만적일 것만 같습니다. 뉴스에서 본 진상 손님 같은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그곳에서 조용히 글을 쓰며 아침 맞을 준비를 하는 소설가 차영민을 상상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일 뿐. 편의점은 바쁘게 돌아가고, 육지의 여느 편의점 못지않게 별의별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텅 빈 편의점의 포스기 앞에서 글을 쓰는 차영민 작가의 모습은 어느새 지워지고 편의점 유니폼인 조끼를 입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하는 차알바의 모습이 제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이 책,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를 읽고 있노라면요.


저는 제주시에 살고 있는데요. 나름 번화한 곳에 살고 있는데도 한밤중에 편의점에 가는 길은 무척 무섭습니다. 육지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긴장감을 이곳에서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11시만 넘어도 편의점에 가지 않는데요. 시골인 애월엔 사람들이 오히려 자주 드나드나 봅니다. 저처럼 평범한 손님들도 많을 테지만, 가끔 혹은 자주 등장하는 진상 손님들이 차영민 작가에게 소재를 던져줍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죠. 

떼를 쓰는 취객, 어떻게든 술을 사가려는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 안면을 텄다고 물건을 판매하려는 중견 화가, 단체로 몰려와 당연하게 중국어로 질문하고 대답을 원하는 중국 관광객들,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알바를 도둑 취급하는 손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서 해야 할 육체노동 이외에 견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 정말 대단해요. 얼마나 힘들까요. 느닷없이 일을 관둬서 점장님을 당황케하는 알바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열심히 이런 것들을 견디고 있잖아요. 진상 손님들, 왜 그러는 걸까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지위나 신분이 높아지는 건 아닐 텐데, 오히려 자신의 면을 깎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차영민 작가의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를 읽다 보면 진상 손님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하지만, 마냥 우울하거나 답답한 건 아니에요. 특유의 경쾌한 문장으로 자신의 답답한 에피소드도 유머러스하게 서술하거든요. 편의점의 피곤이 어디 손님들로 인한 것뿐이겠습니까. 편의점 알바는 만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척 다양한 일을 하는걸요. 편의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생각해보셔요. 게다가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밤에 은밀히(?) 진행되고 있어요. 특히 매월 말. 제가 좋아하는 1+1, 2+1 같은 게 적혀있는 프라이스 카드도 교체해야 하고, 현수막 작업도 해야 하죠. 특별 판매하는 물품이 있으면 그것도 세팅해야 합니다.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게이코라면 기계적으로 척척해내겠지만, 보통의 알바는 그 일이 보통이 아니라고 해요. 하아. 


이런 여러 가지 애환 속에서도 차 작가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지금은 제주시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시지만 당시에는 사장님이었지만 지금은 형이라 부르는 마음씨 좋은 '김 사장'님과 따뜻한 말을 건네며 인사하던 손님, 1+1 의 플러스 원 부분을 주시던 손님 같은 좋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편의점 알바의 희로애락을 유쾌하게 들려주는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를 웃으며 읽다가 문득 눈과 손을 멈추고 나는 어떤 손님이었나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손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노력해 볼까 합니다. 



우리 삶에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바람처럼 스쳐 지내고 살아간다. 바람은 붙잡을 수 없지만, 난 내 삶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라도 붙잡아두고 싶다. 이 글은 나만의 순간이 아닌 편의점에 함께한 사람들과 지금쯤 어딘가에서 나와 닮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순간이다.

제주도 북서쪽 작은 어촌 마을의 편의점, 바로 그곳에서 삶의 작은 순간들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내가 있다.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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