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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불과 몇십 년 만에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상상했던 21세기의 모습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 텐데요.인터넷 덕분에 무척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송금이 없어 소액환을 부쳐야 하던 시대에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 이름만은 알고 있는 세대이기에 인터넷의 발전으로 요새 은행일 보기가 얼마나 쉬워졌는지 실감합니다. 종이돈을 내민 것도 아닌데, 플라스틱 카드에 박힌 칩으로 결재가 됩니다. 더 이상 지갑에 현금을 빵빵하게 채워 넣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가벼운 지갑이라도, 내가 돈이 없어서 지갑이 빈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 비단 금융거래뿐만 일까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은 거대한 망 속에 들어있습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에 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망 안에 세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전기, 교통, 보안, 수도 등등 컴퓨터 제어를 하지 않고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수동으로만 움직이는 시스템이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무척 편리하고 유용한 방식이죠. 그런데, 그만큼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분명 어느 정도의 보안 시스템은 갖추고 있겠죠. 그러나 해커가 포함되어있는 범죄조직에 노출이 된다면, 국가 간 사이버 전쟁이 일어난다면... 문제없이 막아내고해결할 수 있을까요. 일반인인 저는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터넷망을 이용합니다. 기업과 국가의 시스템을 믿고 있으니까요. 발등에 도끼를 몇 번 맞아 깜짝 놀랐다가도 이내 잊어버리고, 전문가들이 잘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다시 믿어줍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뉴욕 시민들은 대재앙과 만납니다. 일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큰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처음엔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정도였기에 동시 접속자가 많아 그런가... 하는 의심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마트의 바코드가 인식되지 않더니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깁니다. 산간 마을이었다면 벌목이라도 했겠지만 대도시였기 때문에 난방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씨가 추워서 냉장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안에 넣을 음식이 있었다면 말이죠. 심지어 조류 독감이 유행한다는 소식에다가 눈폭풍까지 겹쳤습니다. 어쩌면 좋죠?
매튜 매서의 소설 <사이버 스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실제 상황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소설의 주인공은 평범한 프로그래머 마이클인데요. 그야말로 자수성가를 할까 말까 애매한 위치에 있는 남자로 엘리트 처가에 자격지심이 좀 있는 남자입니다. 그의 친구 척은 전쟁 대비론 자인데, 편집증이라고 놀려도 늘 전쟁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남자입니다. 그 덕분에 마이클의 가족들까지도 대재앙을 함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마이클과 척은 대체로 선한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인처럼 착한 건 아니고요. 아무리 세상이 종말로 치닫더라도 되도록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약탈, 살인, 폭행을 반대하며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 하는데요. 놀랍게도 초반엔 많은 사람들이 그들처럼 지냅니다. 마트의 물건을 가져갈 때도 질서 정연하게 약탈하는데요. 일부만이 생존을 위해 폭력을 불사합니다. 폭력과 질서가 양분되어 있을 때 저는 파리대왕을 떠올렸습니다. 이곳에서도 최소한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려는 자와 본능에 충실한 자로 나뉘는구나 싶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시커멓고 거대한 건물들 사이로, 하늘에 든 별들의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컴컴하게 얼어붙은 뉴욕 시에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이버 다람쥐였다.
-p.301
사망자가 늘어가고 폭력에 노출된데다 기아에 시달리던 주인공들은 척이 마련해두었던 산속의 안가로 대피하기로 합니다. 설상가상 맨해튼이 통제된 상황이었지만 안면을 익혀둔 경찰 덕분에 잘 빠져나갑니다. 여기서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들은 또다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후 우여곡절을 거치고 반전을 지나 이야기는 좋게 잘 끝납니다. 이렇게 스포일러를 방출하는 건, 이 작품이 아토피아 연대기의 시작이기 때문이지요. 짧은 영어로 아토피아 연대기를 검색해봤는데요. 이 책이 1권이 아니더군요. <사이버 스톰>이라는 개별 작품으로 되어 있고, 아토피아 연대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 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는다면요. <사이버 스톰>의 몰입도가 상당하고 스토리라인이 탄탄해 아토피아 연대기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출간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실제로 사이버 보안 전문가라서 그런지 소설이 허구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까요. 화기로 공격하지 않아도,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네트워크를 교란시키는 것 만으로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니 정말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