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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웃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소설은 읽은 적 없고 에세이로만 두 번째 만나는 마루야마 겐지의 <개와 웃다>입니다. 몇 년 전에 읽은 책,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이 작가의 까칠함과 유머러스함을 즐겼었는데요. 성격이 참, 츤데레 과 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갑자기 개를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던 꿈을 이룬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개에게 쫓겨 달아나던 기억이 있던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고 마음속부터의 애견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소설가가 된 이후로 지인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그리하여 아내와 의논 끝에 개를 키우기로 하는데요. 문제는, 단지 멋지다는 이유로 대형견을 키우려 든 것입니다. 질 나쁜 브리더 T 축견(기업형)에게 속아 처음 데리고 온 개는 며칠 만에 죽어버리고, 두 번째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에 가까스로 건강한 녀석을 데리고 와서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요. 참 서투릅니다. 소형견으로 했더라면 조금씩 적응해가기라도 했을 텐데. 대형견, 그리고 나아가 초대형견까지. 마루야마와 아내가 선택하는 개들은 죄 그렇습니다. 차우차우 견인 구마만 빼고요.
마당에 커다란 개집도 지어주고 운동장도 꾸며주고 산책도 데려가 주고 먹이와 물도 충분히 주는 데 이런 산만한 개들이라니!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요?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습니다. 그렇다면 슬슬 깨달았으면 좋겠는데요. 주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말이에요. TV 동물농장이라는 방송을 보면 문제견 보다 더 문제 있는 견주가 나오잖아요. 분명 주인에게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셰퍼드, 아프간하운드, 세인트버나드, 아이리시 울프 하운드, 도사견, 래브라도 레트리버... 모두가 제멋대로 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뭐 공격적이었다거나 큰 사고를 쳤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기본적인 명령복종 체계 같은 것이 없어 보였다는 거죠. 주종 관계가 아닌 가족 관계에서도 규칙은 존재해야 하는데, 그 규칙을 지키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 했습니다.
좀 답답할 때도 있었죠. 혼낸다고 개를 때리기도 하고요. 게다가 15년 정도의 기간 동안 9마리의 개가 그들을 거쳐갔습니다. 차우차우 구마는 고령으로 자연사했고요.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또 다른 차우차우 돈구리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갑니다. 나머지는 적응하지 못해 남에게 주어버리거나 죽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같은 병으로 많이 죽게 두었는가 하며 화가 났습니다. 개들에게 흔한 병인 심장 사상충이었지만, 어떻게 예방하거나 할 수는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책의 맨 뒤, 이 에세이가 처음 실렸던 곳의 리스트를 읽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앞의 모든 상황들이요. 개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실린 것이 69년.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가 84년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손쉽게 사상충 예방을 할 수 있는 약 같은 것도 없거나 드물었을 겁니다. 개에 대한 대우도 그러했고요. 마루야마 겐지 정도면 훌륭하게 잘 키워나갔던 거였습니다. 외모로 개를 판단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요. 하지만 그는 개를 키우고 잃어가는 과정을 거치며 개를 사슬에 묶고 강압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사랑으로 함께 하는 것이 옳다는 걸 깨달아갑니다.
이 책을 통해 개와 함께 하는, 혹은 허둥대는 일본의 아저씨를 상상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돈구리도 이젠 세상에 없겠지요. 지금은 어떤 개와 함께 하고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