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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평점 :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희미한 빛으로는 저기 서 있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개인가 싶어 마음을 놓았다가는 늑대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목덜미를 물어 뜯겨버릴지도 모릅니다.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군의 산골마을 궁유면의 사람들도 늑대를 개로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안면이 있던 지서의 순경이 갑자기 늑대가 되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그 누구가 상상했을까요. 그의 어깨에 걸린 카빈 소총은 무장공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든든한 무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총부리가 자신들을 향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죠. 그는 56명의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자신도 자폭해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이 마을 사람들을, 심지어 4개의 산골마을을 돌아다니며 마구잡이로 죽였다니 연속 살인도 이런 연속 살인이 없습니다. 사건 종결 후 윗선에 보고도 제대로 이루어졌을까요? 책임 회피를 위해 기록을 조작하고 파기한데다가 당시 신군부의 청와대는 이 사건을 덮으려 언론 통제를 했었습니다. 그러니 사상자의 수가 매체마다 좀 들쭉날쭉합니다. 사건의 경위는 대체로 드러나 있지만 말입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 우순경 사건을 모티브로 쓰인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황순경이 양 어깨에 카빈 소총 두 정을 메고 수류탄을 두르고 살육을 벌입니다. 그의 총에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56명. 내연녀(혹은 아내)가 파리를 잡으려다 그의 가슴팍을 쳤다는 이유로 꾹꾹 눌러두었던 그의 열등감은 대폭발하고 마을 사람들과 이웃 마을 사람들을 쏘아 죽이고 만다는 점도, 당시 그의 상관들은 온천 나들이를 갔었다는 점도 우순경 사건과 무척 흡사합니다. 아주 끔찍한 일들이, 우순경이 악마가 되었던 그날의 기록이 황순경을 통해 살아납니다. 황순경도 우체국 직원과 전화 교환수를 죽이고, 행인을 죽이고, 초상집에서도 사람들을 죽입니다. 평소에 순경이라는 사람이 결혼식도 안 올리고 동거부터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모양입니다. 사건은 이렇게 우울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무서운 소설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옵니다. 웃으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실소가 터지고 이내 희생자를 보고 웃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이 생깁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또 웃고 맙니다. 황순경이 한 명씩 차근차근 죽여나가는 것처럼 등장인물들도 한 명씩 차근차근 등장합니다. 이름만 존재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처음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정말 살아있는 인간들이었습니다. 나름대로의 고민, 나름대로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죠. 사랑을 꿈꾸는 사람도 있었고, 신부가 되려는 사람도 있었고, 베트남 참전 퇴역 군인도 있었고, 무협지에 푹 빠져서 온 세상이 무림으로 보이는 소년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느닷없이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살아 있었다면 응원해줬을 텐데....
불행 중 다행히 제가 자꾸만 웃고 만 것은 작가의 의도 중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블랙 코미디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웃는 게 당연하죠. 인생을 살다가 허무하게 죽은 피해자들에게 애도하고 몸보신만 하는 경찰, 공무원들에게 욕을 합니다. 희한하죠. 실제 우순경 사건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났는데,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잖아요. 앞으로 계속 변함이 없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슬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