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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
마크 트웨인 지음, 오경희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마크 트웨인은 풍자소설가로 유명하죠. 풍자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에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왕자와 거지>같은 소설은 그 흐름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본명이 사무엘 랭그혼 클레멘스인 그는 배가 지나가기 안전한 수심이라는 뜻의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데요. 미시시피강에서 자라나 수로 안내인 일을 했던 경험에서 나온 필명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이야기의 배경이 미시시피 강 인근인데요. 배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마치 제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가 미시시피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겠죠.
핼리혜성을 타고 태어난 그가 그 다음번 혜성 주기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작품들을 남겼고 많은 사회 활동을 했었는데요. 말년에는 평안하지 못 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던 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또 다른 딸이 죽습니다. 게다가 시대적 배경까지 그가 염세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인종차별, 물질만능주의, 여성 불평등...
그런 염세적이고 우울한 가운데 쓰인 소설이 바로 이번에 읽은 <미스터리 한 이방인>입니다. 풍자를 넘어선 호된 질책이랄까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온전한 그의 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소설은 네 가지 버전으로 남겨져 있는데 모두 미완성이었습니다. '상테페트르부르크 단장','젊은 사탄의 연대기','학교 언덕','No. 44 미스터리 한 이방인' 이렇게 네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 소설은 초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 한 이방인>은 그가 남긴 네 가지 버전의 소설들 중 두 번째와 네 번째의 소설이 편집자의 손에서 합쳐져 하나의 소설이 된 작품입니다. 당시 유산관리인에 의해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마크 트웨인의 생각은 담겨있지만 온전히 그의 소설이라고 여겨도 좋은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맴돕니다. 'No. 44 미스터리 한 이방인'은 <신비한 소년 44호(문학수첩)>으로 출간된 바 있는데, 미완이긴 하지만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그대로의 원고를 완역한 소설이라고 하니 읽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 한 이방인>은 16세기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에셀도르프에서 철없이 신나게 살아가던 세 소년에게 미스터리 한 이방인이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소년의 모습을 한 이방인은 천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요. 죄 없이 순수한 그 천사의 이름은 '사탄'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사탄이지 사실은 천사라고 생각하려 해도 그의 티 없이 맑은 악함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거금을 건네주어 곤경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미래를 보아하니 식물인간으로 살 운명인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당장 죽여버립니다. 비참한 생활을 하며 오래오래 살아갈 사람을 마녀사냥의 희생물로 만들어 얼른 죽게 해주기도 하고요.
사탄의 행실에 기막혀하면서도 가끔은 그의 말에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같은 거요.
"아니야. 그것은 인간적인 짓이야. 그런 말로 함부로 짐승을 모욕해서는 안 돼. 짐승들은 그런 모욕을 당할 이유가 없어."
사탄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너희 너저분한 종족은 항상 거짓말을 일삼고 지키지도 않는 도덕을 요구해. 너희보다 훨씬 우월한 짐승에게 도덕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도덕은 짐승에게만 있어. 어떤 짐승도 잔인한 짓을 하지 않거든.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나 잔인한 짓을 일삼고 있지. 짐승은 누군가를 괴롭힐 수는 있지만,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야. 따라서 그것은 죄가 아니지. 짐승들에게 죄는 존재하지도 않아. 그저 즐기려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짐승을 본 적 있니? 아니, 없어. 오직 인간만이 그런 짓을 해. 대체 왜 그럴까? 그것은 똥개 같은 도덕관념 때문이야."
-p.81~82
사탄은 사탄답게 인간을 멸시할 뿐만 아니라 신에게도 몹쓸 말을 합니다.
"신은 천사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을 거저 주면서 자식들에게는 스스로 노력해서 행복한 인생을 얻어내라고 해. 천사들에게는 고통 없는 삶을 주면서, 자식들에게는 지독한 불행과 몸과 마음의 병을 주며 저주해. 신은 세상에 지옥을 만들어 놓고, 정의와 자비를 떠들어대지.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는 황금률 운운하면서 일흔 번의 일곱 번씩 남을 용서하라고 해. 신은 또 인간들에게 도덕 운운하면서 정작 자기들의 도덕은 만들지 않았어. 신은 인간의 죄에 눈살을 찌푸리지만, 모든 인간에게 죄를 짓게 했지. 신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인간을 창조했어. 그리고 인간의 근본인 신의 위대한 반열에 세우기는커녕,다른 인간에 대한 책임감으로 질질 끌려다니게 만들었어. 가장 끔찍한 것이 무엇인 줄 알아? 신은 너무나 둔감하여 자기 백성이 이렇게 학대당하는 가엾은 노예인 줄도 모르고 그들에게 자기를 경배하라고 강요한다는 사실이야."
-p.201
사탄의 이런 냉소적인 말들이 소설 중간중간 나타나는데 반박하고 싶은 마음과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마음이 서로 싸웁니다. 인간이 그렇게까지, 신이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않나, 너무 말이 심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 그리 길지도 않은 소설이었음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태그를 붙였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면서 결국 인간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인간 다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표지의 말이 딱 들어맞네요.
'주목할 만한 시선, 인간 존재론적 자기반성의 철학적 통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