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0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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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로 만나게 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인상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괴이한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더라도 내면을 흔들어 놓아 나조차 알 수 없었던 공포를 깨어나게 만들었던 솜씨는 그녀를 다시 한 번 찾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랑이 결실을 맺고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언제까지고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그 꿈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등장하지도 않는 - 죽은 드 윈터 부인 레베카는 이름이 있었지만, 주인공인 나에게는 이름조차 불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허깨비와 실체의 경계를 허물어 주인공과 독자를 동시에 혼란시켰습니다. 장편을 따라가면서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스릴, 서스펜스. 그녀의 단편집은 어떨까요?


현대문학에서 출판하는 세계문학 단편선 중 10번째 책, <대프니 듀 모리에>에는 그녀의 거의 완벽한 단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 작품도 실망을 주지 않는, 엄선된 소설들이었습니다. 각 작품마다 느껴지는 서스펜스. 읽다 보면 묘한 기운이 돌아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걸 눈치채는데, 주인공은 모릅니다. 이상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도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쳐다보지 마'에서도,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에서도 말입니다. 아... 히치콕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새'에서는 다행히 주인공이 이상을 빨리 감지하지요. 안전장치를 해둡니다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어쩌면 조수 간만을 이용한 새떼의 공격에서부터 무사한 건 주인공 냇과 그의 가족들뿐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작은 새들이 창가에 있었다. 작은 부리로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 날개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는 창문을 상대하지 않았다. 문짝에 집중했다. 나무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냇은 대체 저 작은 두뇌와 날카로운 부리, 매서운 눈길 속에 몇백만 년의 기억이 있기에 이토록 정확하고 집요하게 인류를 파괴하려 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p.112

 


'성모상','경솔한 말'에서는 심각한 얼굴로 주인공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실소를 잣습니다. 어쩜 저래. 주인공들이 다른 의미로 안쓰럽습니다. 그다지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큰일이랄까요. 그녀의 소설 주인공들 중, 죽는 사람이나 인생의 파멸을 맛보는 사람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뭐 저 정도는 이겨내겠지 싶습니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들이 신경을 뒤흔드는 건 낯선 공포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도 겪을 수 있는 미스터리 한 사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인간 불신에 걸릴 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는 걸 아는 나이라 다행입니다. - 과연 그렇긴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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