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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 권력의 기록 1 ㅣ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평점 :
김용의 무협소설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강호인들의 의리, 패기, 체면, 허장성세도 그들의 뛰어난 무공도 알고 있습니다. 그중 저를 가장 감탄 시켰던 것은 경공술이었지요. 나도 저런 내공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와호장룡의 장쯔이처럼, 동방불패의 임청하처럼.... 하지만 무리. 상상 속에서만 마음껏 날아봅니다.
무협 소설이나 드라마는 무척 위험합니다. 지나치게 매력적이어서 금세 빠져들게 만들고, 헤어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위험을 알고 있기에 가급적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기만 하면 눈을 자극하던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랑야방>인데요. 표지는 단순하면서도 무언가 끄는 매력이 있는 것이 자꾸만 읽고 싶게 만드는 겁니다. 매일 갈등을 거듭하던 중,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위험한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하늘색 종이에 랑야방 인물 관계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순간 호흡이 곤란해졌습니다. 이게 다 뭐람. 뭔가 복잡해. 가계도나, 관계도 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책은 분명 인물이 어마 무시하게 많이 등장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내 부족한 머리로는 한참 헤매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너무나 명확해서 외우고 뭐고 뒤적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읽기만 하면 이해가 쏙쏙 되었으니까요. 캐릭터들도 아주 분명합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매장소입니다. 책 제목이 랑야방이니 주인공이 랑야방이라는 사람이 아닌가 했는데, 랑야방은 천하에 모르는 것이 없다는 '랑야각'에서 발표한 각 분야 고수 베스트 10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랑야방 공자 서열 1위가 바로 매장소인데요. 이 소설이 정치 무협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인공인 그는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릅니다. 심지어 병약하기까지 해서 매일매일 위태위태합니다. 찬 공기도 해롭고 지나친 스트레스도 해롭습니다. 겉으로 티가 날 정도로 몸이 약합니다. 그런 자가 서열 1위라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도 한데. 심지어 그에게는 '강좌매랑, 기린지재'. 그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는 타이틀까지 붙어있습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그는 제갈량 포지션의 인물인가 봅니다. 가상의 나라 양 (대량)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속에서 권력을 쥐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를 차지하기 위해 기회를 엿봅니다. 대표적인 두 사람이 예왕과 태자인데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예왕이 있는 한 태자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왕 역시 태자의 자리를 뺏기 위해서는 매장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하지만 정작 매장소의 마음은 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는 정왕에게 권력을 주고자 합니다. 황제의 눈 안에 있지도 않은 그에게 말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모든 비밀은 12년 전 그날의 사건에 있었습니다.
과연 12년 전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친구였던 정왕도, 약혼녀였던 예황 군주도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요. 과거에 임수였던 매장소는 어떤 복수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요? 남아있는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쏟아부어 이루어야 할만큼 큰 원한이 있다는 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어떤 방법으로 복수를 완성하려하는 것인지... 과거의 친구였던 정왕을 태자로 만드는 것이 복수의 완성인 건지, 태자로 만들며 주변 인물들을 파멸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이 복수의 완성인 것인지...그 모든 궁금증을 남기고 1권이 마무리되어버렸습니다. 2권과 3권이 곧 출간된다는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슬퍼질 뻔했어요.
책에서의 굵직한 사건들이 무겁게 흘러가는데요.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게 만드는 장치가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언예진처럼 약간 가벼운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캐릭터도 있는가 하면, 매장소와 호위무사 비류 사이의 대화도 재미있었습니다. 심각한 중에 은근한 위트가 있어서 책 읽기의 리듬을 살려주었습니다. 덕분에 6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지루할 틈 없이 아주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전개는 어떻게 될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덧) 중국 최고 인기 드라마 '랑야방'의 원작 소설인 이 책에서의 인물 관계도는 드라마와 살짝 다르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