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의 요리 - 이연복 - 이연복의 인생이야기

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돼지고기를 삶으며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양파껍질, 된장, 계피, 생각을 넣고서. 마늘과 통후추가 똑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잡내가 사라지고 맛있게 익어주기를 바라면서요.

유명인의 책은 보통 고스트 라이터가 쓴다는 걸 알고 나서 - 그러고서 본인이 시간 내어 쓴 책인 것처럼 말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 적잖이 실망해 유명인들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연복의 책 역시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책들 중 하나였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를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실망하지 않기 위해 읽지 않아야만 했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끌렸습니다. 개인사에 그다지 흥미가 없지만, 상대에 대해 캐묻기보다는 은근히 알아야 할 것들만 아는 것이 좋다는 주의지만, 어째서인지 읽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읽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나 봅니다. 그리하여, 결국. 책을 열고 말았습니다.

화교학교를 나오고, 그나마 6학년에 도망친 사람이라 책 쓰기는 엄두가 안 났지만, 그래도 내 말과 내 생각을 직접 담고 싶었다.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해준 엄화인 씨, 야밤에 지친 요리사 앞에 녹취기를 놓고 같이 밤을 달린 웅진지식하우스 김보경, 김지혜 씨, 사진을 찍어 준 박미향 기자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요리와 가게 일로 바쁜 엄마 아빠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자기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아들과 딸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

-p. 15 

머리말에서부터 느껴지는 솔직함이라니!

그가 직접 쓴 글이라기보다는 편집자의 손을 많이 거친 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감동받아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은 요만큼의 레시피도 전해주지 않습니다. 어차피 집에서 중화요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섭섭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면 인터넷에 나와 있는 레시피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책은 레시피 대신 이연복 삶의 자취를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지금의 미소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면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쌈닭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집이 세고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끔 쌈닭인가 의리인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웃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의 인생길을 따라가다 보니 손님을 생각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장인정신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대놓고 그런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그냥 느껴졌습니다. 불같던 성질과 무뚝뚝함이 일본 생활을 하며 고쳐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은 미소가 귀여운 연복 사부가 아닌가요. 쿡가대표에서 화가 나서 웃지 않는 그의 눈을 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보통은 귀여우십니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시청자는 그의 동료가 아니라 손님이니까 미소를 잃지 않고 바라봐주는 것이 아닌가. 일할 때는 무척 엄하고 까다로운 편이라 직원들이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쩐지 페이스북 페이지에 목란의 구인광고가 자주 올라오더라니. 그의 밑에서 일을 하려면 단단한 각오 정도로 모자라겠습니다. 저는, 시청자라서, 손님이라서 다행입니다. 딱 거기까지의 관계를 유지해야겠네요. 하하

  영화에서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입대를 하는 목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배달로 돈을 벌겠다고 중국집에 뛰어든 내 모습이 생각났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원망, 그래도 떼쓰지 말고 강해지자는 그때의 결심, 그래도 이것만은잘 해내겠다는 오기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마지막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까지......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다음에 장사하면 가게 이름을 목란으로 하자."

  좋은 기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어차피 내가 이 세상에 나고 자라게 된 것은 부모님 덕분이고 나에게서 뗄 수 없는 존재이다. 가족이란 그런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지극히 효도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내 가게를 열었을 때 이름을 목란으로 지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목란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이 가족과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