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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공주들 - 동화책에는 없는 진짜 공주들 이야기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 지음, 노지양 옮김, 클로이 그림 / 이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드레스와 빛나는 장신구를 하고, 시종과 하녀들을 부리며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더 이상 행복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 그런 모습이 아마도 상상 속의 공주님이 아닐까요. 공주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공주보다 유럽 쪽의 공주를 상상하게 되는 건 디즈니나 외국 동화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주라고 하면, 구한말의 슬픈 운명을 겪었던 공주나 옹주밖에 떠오르지 않는걸요.
그러니 유럽의 공주를 생각해봅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것만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실은 공주들의 삶은 그리녹록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들이 왕실 예법을 익히고, 외국어를 비롯한 각종 교양을 쌓아야만 했던 건, 사랑스러운 딸이어서라기보다는 타국과의 연합을 위해, 왕권 강화를 위해 언제든지 '결혼'이라는 형태의 계약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합스부르크가가 부르봉 가와의 싸움을 그치고 동맹을 맺기 위해 앙트와네트를 결혼 시킨 것처럼요.
대부분의 공주들은 그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였을겁니다. 마음속으로부터 납득할 수는 없더라도 기독교적 사고방식과 자신의 어머니와 그 위의 어머니도 모두 그래왔으니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 그녀들이 배고픈 적이 있었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 당연히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 <무서운 공주들>에 등장하는 공주, 공녀, 혹은 왕녀가 된 사람들은 그녀들과 좀 달랐습니다.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주들도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면들도 많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난 재정난을 일으키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몸부림쳐보아도 결국 끝이 좋지 않아씁쓸합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본 그녀였고, 그들의 언어로 기록된 그녀였으니까요. 좀 더 심하게 깎아내리기 위해 살을 붙여나갔을 겁니다. 그래야 그녀들의 존엄성에 확실히 생채기를 낼 수 있을 테니까요.
19세기 말부터 기록된 공주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방탕하거나 호색하거나 낭비벽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요. 흐응, 그래? 하며 남의 일 대하듯 책을 읽어나가던 저는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타블로이드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왕족의 가십 기사를 읽으며 욕하거나 이해하거나 하는 꼬락서니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다이애나를 죽게 만든 사람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유전적으로 건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건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우울했던 그녀들이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 - 그 방법이 옳지 않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 운명에서 벗어나보려고, 자신의 방법대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던 것일 텐데 나는 이곳에 앉아 그녀들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생각하고 있구나, 남의 괴로움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역사 속 공주의 모습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일까, 이런 것도 지적 호기심의 하나인가....
이해하는 척하면서 비웃는 건 아닌가...
그런 혼란스러움을 안고서도 결국 끝까지 읽었습니다.
책을 정복했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녀들은,
(타인에게) 무서운 공주였을까요
(자신의 운명이) 무서운 공주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