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 그리스 신화로 보는 우리 내면의 은밀한 심리
김상준 지음 / 보아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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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얼마나 적절한지. 


 

저는 어릴 때부터 신화나 우화를 좋아해서 그리스 신화부터 북유럽 신화 심지어 페루 신화까지 읽어보았었죠.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읽어대서 뒤죽박죽. 헷갈립니다. 이게 어디 이야기였지? 티티카카 호수의 여신처럼 아예 지명이 붙어 있지 않으면 참 곤란해요. 심지어 아라비안나이트랑도 섞여서 정말 난처합니다. 가장 헷갈리는 건 그리스와 로마 신화죠. 이름이 헷갈려요. 아무렴 어떠랴. 읽으면서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신화끼리만 헷갈리면 다행인데 현실과 신화의 경계에서 헤맨 적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벌로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아 먹히지만 다음날이면 다시 재생되어서 또 쪼아 먹힙니다. 매일 반복되지요. 그런데 실제로 간은 다른 세포들과는 달리 한 번에 두개로 분열하지 않습니다. 서너 개로 분열되지요. 그러니 회복력이 엄청납니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 때문에 간의 회복이 빨라진 걸까요? 아니면 간의 세포분열이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는 걸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면서도 참 열심히 읽습니다. 그러니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라는 제목은 저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죠. 다만,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려우면 읽다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엄청 재미있는 겁니다. 아주 흥미로워요.


각 장마다 처음엔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르다며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하지요. 호기심이 동합니다. 이제껏 나는 한쪽으로만 조명된 이야기를 읽어온 것 같다는 생각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살짝 기울여 글을 읽습니다. 정말 그래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아야죠. 그러니 주의 깊게 그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간추린 신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 신화 이야기는 제가 알고 있는 바로 그대로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짧긴 해도요. 하지만 앞선 호소문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신화 이야기가 끝난 후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현대인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말 와 닿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그런 의미가 있구나.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신봉하는 남성적인 질서와 이성,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여성이었다. 그 당시 남성들이 생각하기에 여성은 혼돈 그 자체였으며 매우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여성은 매달 피 흘림이라는 월경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불러오면서 출산을 하기도 한다. 그 당시 그리스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불규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여성의 출산과 월경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속으로는 이런 창조적인 행위가 신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 만물을 만든 존재도 가이아(Gaea)라는 커다란 어머니 신이 아닌가?

-p.29 팜므파탈의 원조 판도라의 진실 : 우월감

 



진혼굿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자를 위한 것이다. 한이 맺혀 죽은 영혼을 달래고 좋은 곳으로 보낸다는 진혼굿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은 이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죽은 자를 마음속에서 내보내고, 산 자는 하데스의 말대로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온 이유는 희생자 가족들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슴속의 슬픔을 모두 뽑아내려는 정화의식인 것이다.

-p. 164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의 죽음 : 집착과 상실감

 



그런데 아이게우스는 왜 신발과 칼을 아무나 들지 못하는 커다란 바위 밑에 묻어 두었을까? 테세우스의 어머니인 아이트라에게 맡기고 떠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버지가 이렇게 힘겨운 과제를 남기고 떠난 것은 자식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게 되는 정신적, 물질적 유산은 쉽게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쉽게 물려받은 유산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며, 자식에게 제대로 대물림되지 않을 수 있다.

-p.231 테세우스와 반복되는 근친살인 : 영웅심과 권력욕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한다는 것은 자식들이 어머니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 경직되고 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면 돌로 변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쳐다본다는 것은 자식과 어머니가 일대일의 대등한 관계임을 상징하는데, 이런 대등한 관계를 어머니가 허용하지 않으며, 그럴 때는 자식을 돌로 만들어 아무런 생각 없이 복종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히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어머니는 이렇게 복종하는 자식들의 태도에 매우 만족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식들은 어머니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복종하고,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메두사는 부정적인 어머니가 갖고 있는 공포감을 나타낸다.

-p.263 아름다웠던 여신 메두사의 분노와 페르세우스 : 소유욕과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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