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 허밍버드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읽은 책의 대부분을 리뷰합니다. 

처음부터 리뷰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에는 플래그와 독서메모용 노트, 볼펜, 책갈피를 반드시 옆에 끼고 있습니다. 편안히 읽어도 좋을 것을 뭘 그리 유난 떨며 읽느냐 하시겠지만, 기억력이 예전 같지가 않아요. 책을 많이 읽어 뇌를 활발히 굴리면 치매 예방도 된다던데 저에게는 해당 없음인가 봅니다. 메모도 해야 하고, 플래그도 붙여야 합니다. 책에 직접 적어두시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학교를 졸업 한 후, 책에 글을 적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저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책을 읽다가 자리를 옮길라치면 모든 도구들이 함께 이동합니다. 제 가방에 파우치가 없는 날은 있어도 필통과 노트가 없는 날은 드뭅니다. 그 안에 책이 없을 때라도요.


메모와 플래그를 확인하며 리뷰 초고를 작성하거나 말하자면 콘티 같은 것을 짜봅니다. 술술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합니다. 그래서 정수리에 탈모가 있나 봅니다. 이 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은 책은 차라리 낫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나면 어느 정도 길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정말 골치 아픈 건,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제 스스로의 인생과 평소의 마음가짐 때문에 이야기가 마구 쏟아지고 감상이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두 줄기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과도한 곁가지가 저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것저것 생각이 났다고 해서 그 모든 걸 글에다가 쏟아버리면 그냥 흙탕물이 되고 말 겁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몇 가지의 이야기만 자연스레 연결되게 글을 써야 합니다. 대실패를 하고 마는 글도 있지만 그렇게 글을 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30년째 저를 괴롭히고, 저는 글을 괴롭힙니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가지고 있는 열다섯 가지 재능으로 칭찬받으려 하기보단, 가지지도 않은 한가지 재능으로 돋보이려 안달한다."라고 말했는데요. 저한테 하는 말인가 봅니다. 글쓰기는 저에게 그런 녀석입니다. 애증의 관계죠. 말을 잘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질투 나고요. 긴 문장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샘이나 그 능력을 가로챌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하물며 짧은 문장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쇼트-쇼트의 대가 호시 신이치는 한두 페이지짜리 단편을 쓰는 능력자였습니다. 어쩜 이렇게 짧은 소설 속에 그의 SF, 판타지가 들어 있을 수 있을까. 위트는 또 어떻고. 

그런데 호시 신이치보다 더 짧은 문장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카피라이터죠. 우연히 마주한 문장을 보고 '아니 도대체 누가 이런 재치 있는 글을 쓴 거야?'라며 질투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의 <카피책>을 읽었습니다. <카피책>을 읽고 그의 능력을 카피할 테다!라는 포부를 가지고요.

췟. 카피는 무슨 카피. 못하겠어요. 저는 아직 이 단계에 이르를 수 없습니다. 그도 아날로그고, 나도 아날로그인데 왜 그는 되고 나는 안되는 걸까요? 그는 <내 머리 사용법>을 쓴 사람이고, 나는 읽지도 않은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생각과 생각의 분할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카피책>을 읽다말고 그의 능력을 훔치고자 온라인 서점에 접속. <내 머리 사용법>을 북카트에집어넣었습니다. 다음에 지름신이 내려오시면 질러주겠노라고 다짐하면서요. <카피책>은 초반부터 저를 웃게 만들고 안달복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 모든 게 내 것이 되는 게 아닌데도요. 이 책은 굉장히 재치 있습니다. 재치 있는 사람과 몇 시간을 함께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피곤했습니다.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30년 카피 라이프를 훔쳐내는 게말이 되나요? 천천히 다시 함께 해야겠습니다. 카피를 쓸 생각은 없어요. 다만 짧은 문장에 의미를 함축하는 법을 알고 싶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문장을 만들고 싶고,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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