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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ㅣ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정맥이 있는 저는 가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두근거리고 나면 높은 확률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곤 했지요. 그러니 맥이 이상하게 뛸 때면 이번엔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걸까 하며 불안해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약간의 예지력이 있다고 믿었었나 봅니다.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두근거린 것이 아니라, 부정맥의 두근거림이 불안감과 맥놀이를 하고 있던 것뿐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두근거리더라도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타이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하지만 약간의 불안감은 십이지장 근처에서 웅크리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히비노 쇼타 역시 두근거림과 불안감을 느끼는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그것은 제 것과는 달라 정말로 심하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사를 하던 중에도 그 불안감이 따라왔습니다. 무언가 무척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그 아이의 주변에서 실제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가야 해......
저 어두운 숲 속에서 부르고 있어......
한밤중 동생에게 나타난 히히노라는 녀석은 유령인지, 집 요정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가 이 집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닌 여섯이나. 쇼타는 누나와 동생과 함께 오른 산에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괴이함을 경험합니다. 산의 기운도 이상하고, 산 중턱에 지어진 자신들의 집도 이상합니다. 애초에 집을 짓다가 실패한 터와 건물이 세 군데나 존재하는 산이라니. 무언가가 집 짓는 것을 싫어해 방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나가하시 마을은 옛날에 '나가하시 촌'으로 불렸다. 논밭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집들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촌락이었다. 나가하시 촌장은 대대로 '타츠미 가' 가 맡아왔고, 대부분의 토지를 그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마을 북쪽에 자리 잡은 '도도 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산에는 옛날부터 무서운 뱀신이 산다고 전해져서, 입산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런 신성한 영산(靈山)을 모시면서 뱀신을 진정시키는 한편 입산객이 있는지 눈을 번뜩이며 감시하는 것도 타츠미 가의 역할이었다.
-p.94
우루시바라 유키의 <충사>에서 였던가, 가물가물한 기억 탓에 출처는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산에 있던 어떤 동물 혹은 생각들이 모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산의 주인이 되고 그 산을 지키는 자가 됩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편리에 따라 그 대상을 섬기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산을 지키는 그 존재는 신이기도 하며 동시에 요괴이기도 한 것이지요. '도도 산'의 뱀신도 처음엔 신이었을겁니다. 타츠미 가와 마을 사람들이 모시고 있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요. 그러나 전쟁 이후 몰락하던 타츠미 가의 사람들은 농지 개혁으로 모든 땅을 몰수당하자 영산인 도도 산에 대해 택지 개발을 합니다. 최고 연장자인 센 할멈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공사는 그대로 이어져 산에서 조용히 자고 있던 신령을 깨우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산의 주인은 그들에게 벌을 내렸고, 그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붉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구역을 침범하는 것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산의 피토케미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노한 뱀 신의 치켜든 머리는 어린 쇼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 쇼타는 <나츠메 우인장>의 나츠메처럼 기운을 감지하고 이상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협력자인 냥꼬센세 대신 친구 코헤이밖에 없으니 초등학교 남학생 둘이서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관장>과 <백사당>에 등장하는 '햐쿠미 가'의 분가인 '타츠미 가'의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했던 뱀 신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남은 것은 어른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설득해서 이 집을 빠져나가는 일 밖에 없을 겁니다. 과연 어른들이 믿어줄까요? 설계상 불길하다고 말하면 좋겠습니다만, 어린 쇼타가 알 게 뭡니까. 그냥 불길한걸. 뱀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남북으로 길게 낸 복도라니. 이래서야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 온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불길하지 않습니까. 원래 귀문은 북동향이지만, 이 책에서는 거의 북쪽에 가까운 듯, 센 할멈의 저택 북쪽 창문들이 덧문으로 막혀있습니다. 적어도 이 할멈은 신이 내려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센 할멈에게서 히비노가가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소녀 이케우치 토코의 일기장을 건네받고 읽던 중 다시 무서운 꼴을 당하게 되는 쇼타. 이 마을 전체가 불안함의 대상입니다. 쇼타가 긴장하니 저도 덩달아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쇼타가 향하는 모든 곳에서의 체험을 함께 하며 점점 공포에 빠져듭니다. 상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차라리 만화처럼 상상했으면 좋았으련만. 미쓰다 신조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뇌에 바로 영상을 보내와 저를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마지막, 책을 덮을 때까지 그것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스르륵하고 기어서 제게로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