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속의 여우
에프라임 키숀 지음, 정범구 옮김 / 삼인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4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투표권이라는 걸 처음 손에 쥔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생각을 대신해 줄 사람을 뽑자는 마음으로 투표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차피 다 비슷한 사람이니 그중에 좀 나은 사람을 뽑아보자는 생각으로 투표를 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너무 여러 번 속고 나니 지금은 누가 뽑혀도 결과는 다 마찬가지라 투표하기 싫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어르신들이 왜 투표를 하지 않고 포기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투표하러 안 가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갈 겁니다. 하지만 아이도 슬슬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누굴 뽑아도 공약이 흐지부지된다는 사실을요. 그 사람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아예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는 심보로 나오면 곤란하지요. 거짓말쟁이들 중에 가장 정직한 사람을 골라 투표를 해야 할 텐데. 벌써 걱정이 앞섭니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찌푸리고 마는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에프라임 키숀의 <닭장 속의 여우>입니다. 에프라임 키숀은 <개를 위한 스테이크>로 처음 만났었는데요. 무척 유명한 유태인 작가입니다. 192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만 다행히 살아남아 1949년에는 이스라엘로 이주해 금속공으로 잠시 일하다가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그의 작가 생활의 시작이었죠. 신문의 칼럼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 요새는 직설적이지만 - 그 역시 세태를 풍자하는 글을 썼는데요. 관료주의나 정치 풍자를 어찌나 통쾌하게 하는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그런 그의 정치 풍자력으로 쓰여진 책이 <닭장 속의 여우>입니다. 


정치 경력 50년에 빛나는 아미츠 둘니커는 사람들 앞에서 몇 시간씩 연설하는 것이 큰 장기였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연설 도중 연단에서 쓰러집니다. 의사는 그에게 정치계에서 잠시 물러나 요양하길 권하지요. 비서인 체프는 스위스의 조용한 휴양지에서 요양하길 바랐지만 둘니커의 고집으로 조용한 한 마을로 향하게 됩니다. 조용한 마을 킴멜크벨은 마치 스머프 마을 같은 곳이었습니다. 스머프 마을의 스머프들처럼 서로 도와가며 큰 분쟁 없이 사이좋게 잘 살아가고 있었지요. 대체로 평화로운 마을이었고 화폐 같은 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집은 별개지만 '사실상' 공동생활이나 다름없었거든요. 각자의 역할 분담도 잘 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생활방식은 어쩌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둘니커는 이곳이 못마땅합니다. 전기는커녕 전화도 없어서 마을 외부와 통신할 때는 전서구를 날립니다. 게다가 아무리 소규모라지만 마을을 통솔하는 읍장도 없다니!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정치인으로서 이런 곳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둘니커는 마을 살림을 맡아 하고 있던 이발사를 들쑤셔 '사실상'읍장으로 행세하게 하고, 그 반대 세력으로 구두장이를 내세웁니다. 평화롭던 킴멜크벨은 이발사파와 구두장이파로 나뉘어 싸우게 됩니다. 여기에 '사실상'랍비 역할을 하던 백정 야콥 스파라디까지 나서게 되며 마을은 엉망진창.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한심한 곳이 되어버립니다. 

정치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단란했던 마을은 정치판이 되어버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이 되기는커녕 정치라는 이름의 난장판이 되어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몇 사람이나 산다고 그 조그만 권력을 탐내고 야망을 불태우며 권모술수가 판치는 이곳은 예전의 순진한 사람들이 살 던 곳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모든 걸 다 안다고 여기고, 자기가 아니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여겼던 아미츠 둘니커. 그는 정말로 그런 위대한 사람이었던 걸까요? 우리 주변의 정치가들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맞는 걸까요? 마치 자기가 아니면 세상이 안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분란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작품 배경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였지만, 지금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에 책을 덮으며 씁쓸해졌습니다. 


  "집어치워요. 설마 내가 아직도 당신의 지시와 충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노망든 건 아니겠죠? 정반대입니다! 당신의 그 훌륭한 연설문들을 누가 썼습니까? 대체 누가 머리를 쥐어짜 그 글을 썼죠? 진짜 당신은 누구십니까? 뭘 얼마나 아세요? 당신. 제대로 된 직업 하나라도 가져봤습니까? 둘니커는 70여 개의 기업을 관할한다. 둘니커 여기에, 둘니커저기에, 둘니커 넘어지다, 둘니커 뛰고, 전화하고, 논평하고, 쓰러지고, 일어나고, 매일 열 군데씩 회의나 모임에 참석하고, 최종 심판자이고...... 마치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있지만 정작 자기가 뭐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실상을 알고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죠. 수만 명의 멍청이들이 여러 해 동안 직업을 가지기 위해 교육받고, 평생 동안 그 일을 합니다. 그럼 나중에는 어떤 이름 있는 정치가가 와서 그 모든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가로채요. 그 정치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남들이 이룩한 일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에 반해 막상 실제로 그 일들을 해낸 전문가들은 대학에서나, 아니면 직업학교에서 그렇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죠.

  네! 바로 그겁니다! 그 분야에선 둘니커, 당신이 전문가죠! 연설하고, 연설하고, 또 연설하고. 마치 끝없이 돌아가는 축음기처럼. 자기가 쏟아낸 물에 잠기고 마는 수도꼭지처럼! 둘니커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바쳐 끝까지 싸우지만, 막상 자기 무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사막을 개간하라고 수만 명의 등을 떠밀어 보내지만, 막상 자신은 화분에 물 한 번 줘본 적이 없죠! 정치가! 아미츠 둘니커는 정치가다! 그렇지만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죠. 당신의 혀는 온갖 미사여구로 범벅돼 있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이 당신이 그 웃기는 문학상을 수상한다던가, 또는 별별 문화, 예술 관련 행사 개막식에 참석해서 테이프를 끊는다던가 하는 일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행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을 때까지 모든 것은 척척 진행되죠. 당신이 의자에 앉으면 여기저기서 잘 보이려고들 다가와 인사를 올리고.....(하략)"

-p.290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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