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이미 작년에 영화로도 개봉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길리언 플린의 소설 <다크 플레이스>를 읽었습니다. 주인공 리비 데이는 일곱 살 때 일가족이 모두 살해당한 자신의 집을 다크 플레이스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엄마와 언니들이 살해당한데다가 범인이 오빠였기 때문에 다크 플레이스가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변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은 너무나도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리도 무능하고 짜증 나는 인간이 다 있을까 싶은 러너 데이는 이혼 한지가 언젠데 돈이 필요하면 찾아와 돈을 달라고 생떼를 쓰고 행패를 부립니다.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양육하며 당장 먹고 살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는 패티 데이는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지만 괴로움이 언제나 그녀 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벤 데이는 좋아하는 여자도 있지만, 말하자면 찌질한 놈입니다. 나름대로 허세를 부려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배경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 정신없습니다. 그런 어두운 사람들이 겨우 살아가고 있는 데이네 농장에서 1월의 어느 추운 밤, 엄마와 두 명의 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간신히 도망쳐 살아남은 일곱 살 난 막내 리비의 증언으로 범인으로 지목당한 벤 오빠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23년이 흘렀습니다. 

당시에 충격적이었던 이 사건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잊혀갔습니다. 엄마의 생명보험금은 오빠에게 변호사를 붙여주느라 모두 사라졌고, 어린 소녀를 돕기 위한 따뜻한 손길이 그 아이를 살게 했으며 무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무능함은 아버지를 닮은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어떻게든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리비는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 대신 어디서 돈을 얻을 수 없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미제 사건을 연구하고 추리하는 모임 킬 클럽의 라일에게 연락하게 되고, 뭐든지 끈질기게 해 본 적 없던 그녀는 - 돈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 이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조그만 거짓말들, 숨기고 있던 사실들, 부풀려진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을 때,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되어 벤을 살인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벤 자신의 허세와 말도 안 되는 자부심이 그것을 더욱 부추겼지요. 그렇기에 오빠는 막내 여동생의 위증도 용서하고 감옥에서 수십 년을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기억을 자신도 모르는 새 조작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아이는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것이 쌓이면,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기억하기도 하지요. 이 책에 나오는 소녀들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정말 그렇다는 것으로 굳어져,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내버렸죠. 



내가 살인 사건 후에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떠올랐다. 브루너 선생님은 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푸른색 옷을 입었고, 선생님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내가 해주면 늘 달콤한 사탕을 주었다. "벤이 엽총을 들고 엄마를 쏘는 걸 봤지? 그때 기억을 말해보렴. 리비.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알지만 네가 당당하게 말하면 말할수록 엄마랑 언니들을 도울 수 있고 너 자신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란다. 속으로 삼키고 있지 마. 리비. 진실을 숨겨선 안 돼. 벤이 가족에게 저지른 짓을 벌할 수 있게 좀 도와주렴." 난 아주 용감하게 벤 오빠가 언니를 토막 내고 엄마를 죽이는 걸 봤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면 브루너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살구 젤리와 땅콩버터 사탕을 주었다. 


-p.360


시간은 두 갈래로 흘러갑니다. 

현재의 시간은 작중 화자인 리비를 통해 흘러가고, 과거의 시간은 - 그러니까 사건이 벌어졌던 그 즈음의 시간은 엄마인 패티, 아들 벤, 혹은 몇몇의 사람을 중심으로 한 3인칭 시점으로 흘러갑니다. 

책을 읽고 있는 저는 리비를 따라가다가 그녀가 모르는 과거의 일들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현재의 등장인물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리비조차 모르는 일들을 알게 되지요. 서서히 조마조마 해집니다. 주인공 리비가 썩 마음에 드는 타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들에게 속지 말라고 응원하고 맙니다. 다행히 그녀는 영리하더군요. 점점 진실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항상 정직하게만 사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만, 조그마한 악의나 자신의 허세를 위해 거짓을 말한다는 게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 순간엔 전혀 모를 겁니다. 어쩌면 제가 하는 사소한 거짓말도 결국엔 큰일을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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