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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에 숨긴 엄마 ㅣ 꿈꾸는돌 13
얀 더 레이우 지음, 이유림 옮김 / 돌베개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여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원래는 물리학자인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내놓은 것인데요. 양자역학의 세계가 거시적인 세계까지 확장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취지에서 고양이의
이야기를 합니다. 말년에 과학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인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도 많이 거론되는데, 밀폐된
공간(상자안)에 고양이와 독극물을 넣어 놓았을때, 상자 뚜껑을 열어서 안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죽어있을 수도 있고 살아있을 수도 있으므로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라는 이론인데요. 뚜껑을 여는 순간 동시에 존재하던 두 가지의 상이 하나로 결정됩니다. 즉, 관측하는
행위가 그 물질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실제적으로 생각한다면 뚜껑을 열지 않았어도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만,
양자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즉 두 가지 상태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관찰하는 행위가 있기
전까지는요.
청소년 소설인 <냉동실에 숨긴 엄마>의 주인공 요나스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슈뢰딩거입니다. 동생이 키티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어쨌든 요나스는 고양이를 슈뢰딩거라고 부릅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작가의 장난인지,
요나스는 자신의 엄마를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방에서 죽어있었거든요. 하얀 약병이 옆에서 딩굴고 있었고요.
푸주한이었던 아빠는 옆집 할머니를 습격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는데, 자신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던 엄마마저
죽어버렸습니다. 이젠 동생과 자신은 뿔뿔이 흩어져 고아원에 가야겠지요. 아니, 그것보담도 자신의 복잡한 가정환경이 다 드러나 버릴 겁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내버려 둔 주제에 신문의 상담 칼럼 담당자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디어 애비(폴린 필립스)처럼요.
요나스는 동생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시체를 지금은 방치되어있는 푸줏간의 대형 냉장고 안에 숨깁니다. 모두에게 비밀입니다. 심지어 엄마의
칼럼 독자들에게 오는 메일에도 자신이 직접 답을 하지요. 그러다가 원치 않는 방향의 답을 들은 독자 소녀 헬렌이 집에까지 찾아오는 불상사가
벌어집니다.
요나스의 엄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줄 모릅니다. 요나스는 엄마가
스페인에 가 계시다고 거짓말했거든요. 이로써 엄마는 죽어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요.
그리고 소설은 가정의 비밀을 까발리지 않으면서도 엄마의 시신을 처리하고 엄마의 죽음을 자연스레 - 되도록 아름답게 알리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제가 타이틀과 추천사에 낚였나봅니다. 이 책이 벨기에와 독일의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독일 파르카우에 극장에서 연극으로도 상연된 작품이라고도 하고.... 그러니 웃기고 감동도 있고, 감탄할 요소도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괜히 기대를 크게 가졌나봐요. 그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고 했는데.... 제가 어른이기에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을 이해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청소년들은 재미있게 읽었을까요?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