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자 밀리언셀러 클럽 137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가끔은 인생을 리셋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지금의 이런 저런 일들을 말끔하게 없던 일로 치고 새로운 인생을 부여 받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해도 그 속알맹이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과거의 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 환상의 여자>의 주인공이자 작중 화자인 스모토 세이지 변호사의 과거 연인 고바야시 료코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5년 전 스모토의 연인일 때에도, 5년 만에 재회 했을 때에도 그녀가 고바야시 료코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스쳐지나가듯 만난 옛 연인이 음성메시지로 다음날 의논 할 것이 있으니 만나자고 이야기를 남긴 후 자택에서 살해당한 후에야 그녀가 료코가 아닌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었습니다.

살해된 그녀의 장례 준비와 추억때문에 그녀의 고향에 내려가게 된 스모토는 -료코가 학생시절에 흉이 남을 정도의 큰 부상을 당했었다는 사실을 듣게되고 자신이 아는 료코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추측을 합니다. 그녀의 살해범은 죽고 공범은 체포 된 상태라 궂이 그녀의 과거를 파헤치지 않고 고바야시 료코로서 장례를 치뤄도 될텐데 ,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했던 스모토는 그녀의 과거를 추적합니다.
그녀가 과거를 덮길 원하는지 아니면 알리길 원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 순수히 알고자하는 탐구심 때문이었는지 , 정황상 그녀의 죽음엔 좀 더 큰 음모가 있다고 여겼는지, 변호사로서의 촉이었는지 아무튼 집요하게 그녀의 주변을 탐문하고 들어갑니다. 자신의 일까지 미뤄두고요.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이런 타입의 변호사나 검사는 정의에 불타오르며 지력과 행동력을 갖추고 심지어 액션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던데, 스모토는 학창시절 검도 할때 익힌 아스피린 씹어먹기 스킬 이외엔 사용할 기술이 없는지 무지막지하게 얻어맞고 다닙니다. 그러나 근성하나는 끝내주게 좋아서 늑골에 금이 간 것 같아도 아스피린 우드득이면 됩니다. 안 아파하는 것도 아니고 만화처럼 다음날 이면 멀쩡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멍투성이 얼굴로 끙끙거리며 그녀에 대해 알고자하는 탐구열을 불태우는 것이죠.

흥신소의 기요노, 료코의 클럽 종업원이었던 의리녀 사요코등의 도움으로 료코의 과거를 추적하는 데 성공하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흑막을 파헤치지만 결국 그에겐, 그래서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겁니다. 그녀에 대해 알고자 했던 마음을 해소한 일 외에는 아무것도요.

변호사가 나오는 하드보일드라고하면 <도망 변호사 나리타 마코토> 가 떠오르네요. 원죄를 쓰고 도망다니며 자신의 무죄를 밝혀야하는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 스모토처럼 액션은 잘 되지 않습니다. 정의감과 법에 관한 지식으로 타인을 돕지요. 스모토는 자신만의 이유로 사건을 따라가니 마코토와는 많이 다르긴하지만, 적절한 템포로서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소설이라 중간중간 지겨울 법도하고 골치아픈 부분도 있음직한데 스모토는 한 호흡 한 호흡 ,자신은 무리하더라도 독자는 무리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같습니다. 힘겨워 질만하면 얻어맞도 쓰러지는 걸요.

죽은 연인의 과거를 추억하는 남자라니 집요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그녀를 사랑했었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녀의 과거를 찾아가며 과거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죄책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었던 간에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던 그녀가 가끔은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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