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주변에 편의점이 너무 많습니다. 과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다들 장사는 괜찮은 건지. 어찌나 편의점이 많은지 길 건너에서 마주 보고 있는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편의점이 있는데 굳이 그 부근에 편의점을 여는 점주님들의 도전정신은 놀랍기까지 하네요. 저라면, 안 하겠는데. 하지만,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편의점이 없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제 위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게 훨씬 편리하죠.

 

편의점이라는 게 조금씩 번져나가기 시작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는 정가를 다 받는 얄미운 가게였습니다. 10% 할인해주는 동네 슈퍼가 문 여는 시간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내 너를 이용하지만, 낮엔 굳이 너를 이용할 일이 있겠느냐며 발길을 돌렸었지만, 편의점은 본래 자신의 이름답게 (CVS :ConVenience Store) 점점 진화해 알뜰 소비자마저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1+1 이니 2+1 에다가 제휴 할인, 요일 할인, 포인트 적립까지... 이젠 웬만큼 계산기 두들기는 실력이 아니라면 동네 슈퍼가 저렴한지 편의점이 저렴한지 헷갈립니다. 그러니 습관처럼 배가 심하게 고플 땐 편의점으로, 조금 덜 고플 땐 슈퍼로 향합니다. 어쨌든 배고플 일은 없어서 좋네요. 반면, 아침 시간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저렇게라도 아침을 먹고 가는 것이 좋은지, 인스턴트식품으로 어린 시절부터 세포에 미뢰에 가공의 맛을 새겨 넣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안쓰럽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시로 바뀌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책임감의 부재인가 점주에 갑질에 못견딘 을의 설움인가 고민하게 되고, 갑질을 하는 점주도 실은 갑이 아니라 본사의 노예 생활을 하는 을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편의점은 우울하고 안쓰러운 곳일까요. 1300원으로, 1500원으로,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8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고 힘내서 살아보자는 영혼들의 쉼터인 것인가요.

최초의 24시간 이용 가능한 슈퍼의 형태에서 벗어나 진화한 편의점은 단순 소매 유통상이 아니라 복합 만능 생활 거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생필품, 일상용품뿐만 아니라 식당 대용, 술집 대용(편의점 외부 공간에서)으로 이용되며, 명절에도 문을 열어(제주에는 열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배고픈 영혼들을 달래줍니다. 각종 요금 수납, 택배서비스, 티켓 판매, 게임머니 구매 등의 종합생활 서비스도 하고 있습니다. ATM 기계 설치, 심지어 명동에는 환전소 기능까지 갖춘 편의점이 있다고 합니다. 저희 동네 모 편의점은 요일별 메뉴를 달리하는 3900원 덮밥집까지 운영 중입니다. 수익금의 일부는 무상급식기관에 기부도 한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편의점 앞 너른 마당에 천막까지 둘러주어 손님들이 추위에 떨지 않고 치맥을(치킨도 팝니다)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합니다. 이 모든 서비스들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편의점인 것입니다.

갓 구운 빵, 비상약 문구, 꽃, 식당, 술집, 카페, 은행, 여행사, 택배사 등의 상업, 공공기관, 문화공간들을 하나에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근의 해당 점포들을 모두 자신의 점포에 흡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편의점은 소시민인 사장님의 복합 가게이지만, 5개의 편의점이 우리나라 편의점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거대 기업이 소규모 상업들을 하나씩 찍어누르며 흡수하고 있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치킨전>에서 느꼈던 아이러니를 <편의점 사회학>에서도 느꼈습니다. 이용을 하지 않으면 소점포 점주인 사장님이 신경 쓰이고, 이용하자니 거대 기업이 소상인을 괴롭히는데 일조하는 것 같고. 편의점을 어떻게 보아야 좋은 것일까요? 저는 오늘도 라면을 사러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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