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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은 부유한 성주(...상인이었나)로, 살림이 넉넉치 않은 아가씨와 결혼 후 자신의 넓은 성의 모든 것을 관리하게 합니다. 이 휘황 찬란한 모든 것이 그대 것이라며. 하지만 단 한군데의 문만은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 애초에 열쇠는 왜 주냐고- 경고를 어긴 신부는 금지된 방에 들어가 푸른 수염이 죽인 전처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죽을 위기에 닥쳤으나 오빠들이 달려와 구해주지요.
남자에 의한 위기. 남자로 인한 위기 탈출.
안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은 <푸른 수염>을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으로 재 구성한 소설입니다. 부유한 남자에게 혹해서 시집가 위험에 처한 딸을 '엄마'가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 멋졌습니다. 여자의 위험을 엄마가 구해줬으니 페미니즘인데.. 뭔가 아직도 부족한 기분.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누군가가 구해줘야만 수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을 해소시켜 준 소설이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이었죠.
이 책의 주인공은 <살인자의 건강법>에 등장했던 여주인공 정도의 강인함을 지녔습니다. 그녀의 촌철살인마저 닮았습니다.
이 소설의 푸른 수염은 20여년간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은거한 에스파냐 귀족입니다. 40대인 그는 부모님의 죽음 이후로 30여개의 방이 있는 저택에서 나오지 않고 고용인들을 부리며 살고 있었지요. 요리, 연금술, 재봉등의 재능이 있지만 취미는 사진찍기랍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에서 그녀가 들어가지 말아야 할 방은 '암실'입니다.
푸른 수염은 신부를 모집하지 않습니다. 세입자를 모집합니다. 파격적인 월세. 앞서 8명의 세입자가 행방불명되었지만, 나쁜 남자라도 나에게만은 괜찮을거야라는 여성들 공통의 감정으로 세입자가 되길 원하는 여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9번째 세입자는 벨기에 여자 사튀르닌. 이 집에 대한 - 암실에 대한 - 호기심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남자와의 (고용인들도 함께지만)동거가 두렵지 않다며 스스로에게 갑옷을 입히듯이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그 인간은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불안을 먹고 살아. 그에게 난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p.67
조금 연극체 같은 대사 때문인지 장면 장면들이 흑백영화 처럼 느껴집니다. 무채색의 남녀가 논쟁을 하며 맛있고 멋있는 음식을 나눕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해 무지한 것이 아쉽습니다. 쉽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화려함을 지녔지만 무채색일 것 같은 그들의 대화에 오믈렛, 샴페인의 노란빛 혹은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사튀르닌은 위험한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 남자가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오해일거야. 점점 부드러워지고 연약해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남자에게 매료된것인지 금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속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안타까움을 느꼈는지 그녀는 이 집의 비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어느 새 흑백이었던 세상이 컬러로 돌아와있음을 느꼈습니다. 모든 푸른 수염에서 그러했듯이 그녀가 승리했기 때문이죠.
그 인간은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불안을 먹고 살아. 그에게 난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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