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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ㅣ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어린 시절 외갓집에 맞겨져서 자란 적이 있습니다. 대개 외갓집이라면 시골을 생각하게 되지만 저는 여의도 시범 아파트에 살았더랬습니다. 여의도 국민학교 2학년,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용돈과 쪽지가 있었습니다. 그 돈을 들고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켄터키 치킨'한 조각을 사 먹고 '로라스케이트'를 타며 친구들과 놀았던 것이 치킨에 대한 첫 기억입니다. 물론, 세 살 때 이모가 사준 통닭을 받아들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문 잠그고 꾸역꾸역 먹으며 미래지향적인 1인 1닭을 실천했다는 일화도 있다지만,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단골 닭집에서 닭을 튀겨다 먹기도 했습니다. 차르르 기름 끓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는 우울한 어린 시절도 튀겨서 날려버렸었지요. 그 후 무슨 무슨 양념치킨 시대를 맞이했고 - 아마도 페리카나, 처갓집 등등이었을겁니다. - 맵고 단 양념치킨을 뜯어먹으며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었었죠.
20대 중초반 서울에서 살게 된 저는 먼저 인 서울 한동생의 초대로 신촌에서 드디어 KFC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주시에는 여전히 KFC가 없는데, 굳이 먹고 싶다면 한라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아무튼 KFC의 첫 경험은 신세계 그 자체였고, 이런 맛이 있다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종로에서 파파이스를 경험하고는 이쪽이 더 좋아! 선언을 했으나 서울에서 사귄 친구의 안내로 종로 시민 호프에서 치맥을 겪은 후엔 역시 치맥이로군!!! 했었습니다. 그 후 어쩐지 점점 입맛은 닭갈비와 닭강정, 찜닭을 거쳐 마늘과 닭의 하모니를 사랑하는 리틀포니 덕에 치킨은 저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을 어찌 이기리오. 집에서 가라아게도 만들어보고, 너겟이니, 핑거휠레, 치킨 가스, 깐풍기, 라조기 등을 만들어 먹어봐도 바삭한 튀김옷이 파삭하고 떨어져 나갈 듯 한 크리스피 치킨 생각은 쉽사리 떠나질 않는걸.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친구와 서먹해진 그 슬픔.
제주는 특이하게도 타 지역에 비해 지역 상권이 잘 살아있는 편이라 운동회나 야유회 때 브랜드 치킨보다는 시장 닭이 우세한 편입니다. 심지어는 순대로도 유명한 보성시장 근처를 지날 때면 닭 튀기는 냄새가 큰 길까지 퍼져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민하게 합니다. 시장 닭이 우세하다고 브랜드 치킨이 없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교촌이나 BBQ, BHC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다소 열세인 네네치킨, 굽네 치킨 등의 매장들과 더불어 부어치킨, 호식이 두 마리 치킨 같은 경북에서 남하(?) 한 치킨까지 - 그 외에도 무척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 - 많은 매장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야 다양한 브랜드의 맛을 골라 먹는 재미가 있지만, 제주도민이 매일 치킨만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관광객들이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놔두고 일부러 치킨을 시켜 먹는 진귀한 행동을 할 것 같지도 않으니 업주들은 답답할 노릇일 겁니다. 저는 절대 선호하지 않는 대형 마트의 치킨들도 사다 먹는 데다가 맥도날드에서 요새 치킨을 미는 분위기라 업주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척 섭섭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치킨시장은 과포화 상태일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개업 집들도 늘어만 가니, 치킨을 시켜 먹지 않는 제가 이상하게 미안합니다. 안 그래도 치킨에게 미안한데 <대한민국 치킨展>을 읽고 나니 더 미안해집니다. 치킨집에도 미안하고, 양계농가에도 미안합니다. 이 책은 치킨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치킨이 지나온 길부터 치킨집 사장이라 쓰고 노동자라 읽어야 하는 현실, 양계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탈탈 털어냅니다. 외국의 심각한 식품 고발 책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제목에 展을 붙여 놓은 것처럼 춘향전이나 별주부전을 읽듯이 처음부터 유쾌하게 읽어나가다 보면 치킨에 대한 향수, 그리고 애틋함이 생겨납니다.
아.. 치킨이 땅기네요.
사장님, 무는 안 주셔도 됩니다. 그것이 도움이 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