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예술가란 아무래도 남들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공감각이든 초현실이든 혹은 제가 모르는 그 무언가이든. 그런 것들을 붙잡아 색채로, 음악으로, 언어로 표현해주어야 저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그 형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멍하니 있는 듯해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을요.

<신의 손>에 등장하는 - 아니, 등장하지 않는 - 기스기 교코도 그런 인물입니다.

 

한밤중에 당신을 보는 눈.

당신은 언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런 건 없어요.

그건 환상 그건 환각.

 

언어로서 심상을 표현하는 작가임에도 언어를 부정하는 그녀.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용하여 기술하는 것이었을까요? 텅 빈 공간에 펼쳐져 있는 흩뿌려진 이미지와 문자들을 고스란히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종이 위에 옮기는 아름다운 손을 가진, 남자를 홀릴만한 미모를 가진 기스기 교코는 허공의 이야기들을 옮기는 것에 분주한 나머지 퇴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읽는 건 싫다. 오로지 쓰기만 할 뿐. 자신의 글도, 타인의 글도 읽지 않습니다. 그러니 작가의 꿈을 꾸며 도합 400자 원고지 15000여 매의 중 단편들을 쓰는 7년여간 데뷔는 하지 못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천재로서 존재했던 것이었겠죠.

소설은 기스기 교코의 작품들 중 [꽃의 사람]이 혼고 모토코에 의해 도작 된 지 3년 후 문학 상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미 기스기 교코는 3년 전 행방불명되었으므로 혼고 모토코에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예잡지 편집자이자 과거 기스기 교코의 애인이었던 미무라는 내과의사 히무라의 전화를 받습니다. 히무라의 환자인 다카오카 마키라는 여자가 [녹색 원숭이]라는 소설을 미무라에게 보내길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품은 제목과 내용 모두 기스기의 것이었고, 심지어 미무라를 직접 만나러 온 다카오카 마키는 기스기의 사소한 버릇마저 닮아있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빙의일까요. 아니면, 사기꾼일까요.

한편, 기베 미치코라는 기자는 3년 전 고베에서 벌어졌던 유아 연쇄 유괴사건을 추적하는데, 앞선 3건의 아이들은 무사히 조건 없이 집으로 돌아온 반면 마지막 사건의 아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 했습니다. 범인 역시 4번째 사건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하는데, 사건을 추적하던 미치코는 다카오카 미키에게서 [꽃의 사람]이 도작인 것 같다는 제보를 받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미무라, 히무라등과 만나 기스기 교코의 행방불명 사건까지 쫓게 되는데, 의외의 결말을 만나게 됩니다.

남자의 시선으로 보면 지켜주고 싶었던 여자,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였던 기스기 교코는 여자의 눈으로 본다면 괴이한,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 <신의 손>이 모치즈키 료코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대단히 놀랍습니다. 소설은 후반으로 갈수록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싸이게 합니다.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기스기 교코의 모습은 그 존재감이 지나쳐 어쩐지 저마저 그녀의 마리오네트가 된 것만 같습니다.

한밤중에 당신을 보는 눈.

당신은 언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런 건 없어요.

그건 환상 그건 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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