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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 ㅣ NFF (New Face of Fiction)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이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러시아의 소설가라고하면 톨스토이, 체호프, 도스토옙스키가 떠오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톨스토이 단편 -그 중에서도 바보 이반을 좋아합니다- 과 체호프 유머단편집 같은 것 정도밖에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괜히 어려울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거장의 책을 읽자니 주눅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실은 얼마전 일본작가의 문학 소설을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감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글은 읽는데, 문학은 모르겠습니다. 알려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문학(순수문학이라고 할께요)문맹인 제가 폐트루셉스카야의 소설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를 읽었습니다. 처음엔 제목에 사로잡혔고, 두번째로는 단편의 강렬함에 사로잡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인줄 알았습니다.
이 책의 단편들은 옛 러시아를(혹은 소련) 배경으로 하는 듯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게 쓰여 현대에 접목시켜 상상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남의 행복을 질투한 여자에게 복수하며, 전염병이 도는 도시의 비참한 모습, 의처증 남편의 살인등의 기묘한 우울감이 지배적이었으나 반대로 우울하지만 계속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죽음과 우울이라는 코드가 전반에 퍼져있어 포우를 떠올리게 하지만, 문장의 진행은 톨스토이에 가까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이 성스러운 것을 근거로 인간을 생각해보게한다면, 페트루셉스카야의 소설은 죽음과 더불어 인간을 생각하게 합니다.
1부는 기묘하고 음침한 분위기의 소설로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언제라고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읽으면서 기분이 우울해짐을 느낍니다. 그런데 왜 손에서 놓지 않는걸까요?
2부에 들어서는 조금 난해했습니다. 기승전결의 구조로 되어있는 소설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기승전전이랄까, 오픈 결말인 경우넹'그래서 뭐?'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순수문학을 놓아버린 자의 멍때림 같은 것인가봅니다. 그리하여 2부에서 책 읽기를 포기 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앞의 1,2부에 비해 3부는 덜 어두워서 마무리 단계에 읽으며 아주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죽음이라는 테마는 변함이 없었지요. 책을 다 읽고나니, 이 책에는 삶과 죽음속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으며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는 삶은 '어머니'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