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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8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신간으로 나온 밀리언셀러 클럽의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를 읽은 후 예전 시리즈들도 읽고 싶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왔습니다. 2007년 발행된 (3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는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며 살균 소독기에서 팔랑거리며 향을 쏘인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묵은 책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10편의 단편들의 공통점은 귀신이나 유령이 아닌 - 둘의 차이는 투명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사람으로 인한 공포가 될텐데, 제가 좋아하는 슬금슬금 다가와 확 낚아채는 공포보다는 너무나도 싫어하는 피튀기는 슬래셔에 가까웠습니다.
귀신 같은 것이 나오는 편에도 결국은 인간의 광기가 선행되는 것이었기에 굳이 말하자면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 인간의 광기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싫어하는 분야라면서 어째서 다 읽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이불 속에 숨어 두 눈을 내놓고 전설의 고향을 끝까지 보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딸내미는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눈감고 귀막고 중얼중얼거리며 외면하던데, 그건 엄마라는 보호자가 있기 때문일까요? 저는 두려울 때 감각을 더 예민하게 다듬어올리는 습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호를 받기 보다는 보호하길 원하는 쪽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피튀기는 글을 읽노라면 바닥에 들러붙어 찐득한 농도로 흐르는 붉은 피와 신발 바닥에 들러붙어 걸을 때 마다 쩌억쩌억하는 소리를 내는 그런 감각적인 느낌이 비릿한 피비린내를 함깨 데려와 한번에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렇게 진저리를 치면서도, 톱으로 시신을 켜는 장면에서는 저렇게 많은 피와 지방분이 욕실 배수구로 내려가면 이내 막히고 말텐데.... 라거나 톱날 사이의 살점을 때때로 물로 씻어 떼내고 다시 작업하는 장면에서는 물로 씻는다고 잘 안씻길텐데... 하는 걱정도 해주는 걸 보면, 저의 일부분엔 잔인한 면도 - 남을 아프게 하는걸 질색함에도 불구하고 -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중적인 감각에 눈을 가늘게 뜨고 책을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하니까.
그러나 우명희의 '들개'는 정말 싫었습니다. 본인에게는 이유가 있지만, 당하는 자는 이유가 없는 묻지마 살인. 죽이고, 난자하고, 시간하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어린시절로부터 지속된 비뚤어진 내면 때문이지만, 그건 범인을 이해하고자하는 시도를 했을 때 던질 수 있는 동정이지 납득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박동식의 '모텔 탈출기'는 그야말로 반전. 블랙코미디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비신랑이자 의학도인 남자가 가출소녀에게 20만원을 주고 원조교제를 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소녀는 욕실에서 미끌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하고, 남자는 소녀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원조교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소녀의 사망을 은폐하기로 합니다. 시체를 토막내고 분해하고, 자신이 소녀로 분장해 시신의 일부를 들고 나오고 모텔벽을 등반(?)하여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나머지 시신을 들고 나옵니다. 결과는 성공! 그러나 이 모텔은 몰카가 설치되어있어서 몰카 시리즈를 촬영해 몰래 유통시키는 나쁜(?)모텔이었는데요. 하필 남자가 투숙했던 방에는 그가 모든 작업을 했던 바로 그 욕실에만 몰카가 장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낭패가!! 아. 웃겨요. 직접 읽으면 더 황당하실거에요.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탁 하고 맥 풀리는 느낌이거든요.
책의 모든 단편들은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믿고 살아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