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2
스티븐 킹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의 샤이닝은 등장인물들 중 누구의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샤이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30년후 <닥터 슬립>의 주인공이 되는 대니,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휘둘리다가 이제는 남편에 의해 운명이 휘둘리고 마는 웬디, 내면에 무언가가 가득(지나치게) 쌓여있지만 제대로 표출시키지 못하고 억눌러온 왕년의 알콜중독자 잭. 이 토런스 가족 세명의 입장은 서로 다르겠지만, 마음의 상처가 남을 정도의 사건을 함께....아니 각자 서로 겪었다는 것이 공통점이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무섭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아니, 역시 무섭습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최근 출판된 <닥터 슬립>이 샤이닝을 가진 자들과 외부의 적들과의 싸움이라면, 이 책은 철저히 내부적인, 그리고 내면에서의 싸움이었습니다.

지형적으로도 고립되어 있고, 계절적으로도 고립되어있는 외딴 장소인 오버룩 호텔에서 누구와도 교류하지 못하고 갇혀있는 상황이지요. 억눌러져 있는 자아와 알콜의 유혹을 끊어내려 애쓰는 중인 잭은 스스로가 부여한 열등감 속에 갇혀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전 욱하는 바람에 연약한- 사랑하는 아들의 팔을 부러뜨리고 만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로써 남편으로서의 권위가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보여주는 애정도는 변함이 없건만, 스스로가 다시 아들을 상처 입힐까 걱정되고, 아내는 자신을 가끔 가정폭력범 보듯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라고 하기에는 그 사건이 서로에겐 무척 큰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딕 할로런이나 대니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샤이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그는 갇혀있는 자신을 지나치게 억눌러 왔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알콜일텐데요. 알콜로 인해 근무중이던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술은 끊었지만 학생과의 폭력사건이 금주 후유증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에 이것저것 참 힘든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생활도 해야하고, 사건도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존심이 뭉개져가면서 어쩔 수 없이 오버룩 호텔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의 심리상태는 확실히 불안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잭이 호텔의 스캔들 기사가 스크랩된 것을 발견하자 자존심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고 좋아하며 이를 이용하려다 도리어 오버룩 호텔에게 이용당하고 마는 것이지요. 애초에 그 스크랩 더미는 오버룩이 그에게 미끼로 놓아둔 것이었는데... 말 그대로 덥썩 문 셈이죠. 미끼를 문 후에도 그는 자존심 상해 합니다. 호텔이 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샤이닝을 지닌 자신의 아들 대니였기 때문입니다. 잭을 낚은 이유는 대니를 잡기 위한 것이었거든요. 작은 미끼로 큰 미끼를 낚은 후 다시 그것으로 월척을 노리겠다는 호텔의 노림수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심한 질투를 느끼지요.

 

웬디는 잭이 대니의 팔을 부러뜨린날, 아니 그 조금 전이었나. 그때부터 가끔 이혼을 생각했지만 돌아갈 친정이 없어(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포기하고 겨우 가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대니를 사랑하는데도, 대니는 어쩌면 위협적일지도 모르는 아빠를 더 많이 사랑하는데 질투도 느끼지만, 여차하면 대니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로 살고 있었습니다. 역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것인가요?

 

대니의 입장이 이들 중 가장 안타깝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살인 이 아이는 원해서 가지게 된 능력이 아님에도 샤이닝이라는 능력때문에 아빠의 불안정함, 엄마의 불안을 모두 읽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래를 보기도 하고요. 오버룩의 사악함도 압니다. 그러나, 뭘 어쩔 수 있겠습니까. 겨우 다섯살인걸.

꼬마가 헤쳐나가기엔 너무나 두려운 일들이 바로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대니가 자신들의 세계로 오길 원합니다. 그 아이는 자신들을 자유롭게 할 은빛 열쇠이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닥터슬립과 샤이닝을 읽는 순서가 뒤바뀌었는데요. 둘 중 어느 작품이 더 나으냐고 묻는다면 샤이닝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닥터 슬립의 초인적 세계는 상상할 수 있는, 혹은 상상 이상의 세계라고 한다면 샤이닝은 현실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유령들이 득시글거리는 오버룩 호텔은 없지만, 샤이닝에서 진정 무서운 것은 유령이나 과거와 겹치는 환상, 공격적인 전정 사자들이 아니라 가족내의 누군가가 서서히 자신에게 공포스러운 존재로 바뀌며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 안전한 요람따위 산산히 부서져버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 그런 점이었습니다. 그런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기에 그 공포와 불안, 두려움에 쉽게 감염되어버리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