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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고헤이지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고헤이지. 유령역을 주로 맡는 배우이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존재감이 약한자이기에 유령역을 맡을 수 있는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그는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기를 꺼리며 마치 은둔자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장지문 안쪽에서 숨어살고 무대에서는 유령으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모호한 존재감이 뚜렷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나봅니다. 존재감이 뚜렷하다고 말했지만, 그들 역시 마음속에 품고있는 갈등과 괴로움이 있는 존재였기에 어쩌면 고헤이지의 그런 행동을 내심 부럽게 여기며 비겁하다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침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에 혀를 차게 되면서도 5년간이나 같이 살면서 그를 무시하고 매몰차게 대하는 아내의 행동과 독한 모습에 그를 측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저 역시 은둔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헛방에 숨어살며 장지문으로 아름다운 아내를 훔쳐보기만 하는 것이 장기인 고하다 고헤이지는 유령연기자로서는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극단에서 북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고헤이지 친구 다쿠로는 고헤이지에게 지방공연에서 유령역을 해달라고 하지요. 사실은 그의 아내 오쓰카에게 흑심이 있습니다. 고헤이지는 지방공연을 가게되고 그 곳에서 여자역할을 하는 가센이라는 남자의 사연도 듣게되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길에서의 유령연기 연습으로 살인사건의 증인 - 물론 누군가가 그리되게 꾸몄지만 - 이 되어 상금도 받습니다. 금화를 만지며 오쓰카를 생각하던 고헤이지는 다쿠로에게 얻어맞고, 밤에 뱃낚시를 갔다가 가센에게 떠밀려 살해당하고 맙니다. 가센이 고헤이지에게 품었던 살해욕구는 고헤이지에게는 뜻밖인 것이었으나, 그에게 살의를 품었던 것은 가센 뿐만이 아니었으니, 아내 오쓰카를 노리는 다쿠로 역시 그러했고, 살인마 도도로키 운페이 역시 그러했습니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그에게 이처럼 살의를 뻗는 사람이 여럿이 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지만, 각자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밤배낚시를 가기 전, 고헤이지는 한 인물을 만납니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여러가지 모습으로 살다보니 어떤 것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지 알 수 없다는 혼란에 빠져 갈등하고 있는 지헤이를 만났는데요. 고헤이지는 어떤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요. 마음을 조금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뜻밖의 인생. 아름다운 아내 앞에 나타나 우뚝 서지 못할 정도로 소심함의 결정체인 고헤이지 이지만, 사실은 지독한 책임감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죽은 전처와 아들에 대한 사연을 들으니 그가 잠시 침묵했던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책임감을 이렇게 그 나름대로 표현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표현 할 줄도, 슬픔을 표현할 줄도 몰라 스스로 껍데기로 살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지헤이? 음? 어디서 들어 본 듯 한 이름입니다. 갸웃. 비슷한 이름들이 많으니까 다른 소설 어디선가 들어보았었겠지. 응? 마타이치? 응? 앗? 책을 읽다가 뒤적뒤적. 앗. 항설백물어에서의 그들이었습니다. 괜히 반갑더군요. 어쩐지 유령연기를 통해 살인범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게 하는 모든 구도가 빈틈없이 짜여진 각본으로, 우연을 가장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항설백물어의 그들이라면 이해가 되지요. 깨닫고 나니 항설백물어의 장편 버전을 본 것 같습니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각장의 제목으로 되어있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이야기가 주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힌트를 얻게 된다고 했는데.. 한자를 잘 모르니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궁리했으나 저에게는 어렵더군요. 출판사 서평을 슬쩍 들여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중간에 잠시 변하지만, 변하고 나서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오는 인물들이 존재한다고 하네요. 음.. 그렇군요. 그런 의미가 있네요.
참, 잊을 뻔 했군요.
고헤이지는 가센에게 살해당하고, 다쿠로와 도도로키에게 다시 살해당하고서, 그의 부음을 알리러 온 극단 사람들 보다 하루 먼저 집으로 돌아옵니다. 유령같은 존재 고헤이지가 정말로 유령이 되어버린걸까요? 책의 마지막은 그의 집에서 피를 뿌리고 -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고헤이지는 오쓰카와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습니다.
- 누군가를 선택할 때는 거기에 동반되는 고통과 혐오도 포함하여 몽땅 받아들일 각오로 해야한다.
애초에 사람의 마음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침과 낮, 낮과 저녁마다 달라지고 옮겨가는 것. 아무리 좋아하는 상대라도 언젠가는 싫어질 수 있고, 질렸으니 바꾸겠다는 것 또한 이상한 이야기다. 혼인을 한 이상 끝까지 같이 살아라, 반려를 위해 참고 노력하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 산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부부가 되고 싶어 할까. 한 지붕 아래에 모여 사는 것은 왜일까. --- p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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