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번에 읽었던 <신에게 보내는 편지>의 작가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의 연작 시리즈중 하나인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을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잘못 알고 있었어요.

<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첫번째 작품이라고 했었는데요. 그렇지 않더군요. 이 책,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이 먼저 나온 작품이더라구요.

엄마는 아기때 떠나버리고, 아버지랑 둘이서 살고 있었던 모세는 유대인입니다. 그렇다고 유대인의 율법에 얽매어 있지는 않습니다. 율법보다도 그 아이에게는 마음의 허전함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만큼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아버지는 일과 책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아이를 사랑해주지 않습니다. 모세는 열세살, 아버지의 돈을 몰래 훔쳐 창녀에게 갑니다 열여덟살이라고 속이고요. 아마도 모세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아랍인이라고 부르는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냅니다. 사실 그는 아랍인도 아니었고, 이슬람교도라기 보다는 수피교도였습니다.

수피교란 이슬람 고유의 율법은 준수하지만 형식적인것 보다는 신도들 각자의 내면적 각성과 코란의 신비주의적 해석을 통해 이슬람 초기의 순수한 신앙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이런 수피교도인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유대인 꼬마 모세와의 우정이란 묘하게 생각되지만, 모세는 부모의 사랑이 부재된 아이었고, 이브라힘 할아버지는 이웃의 사랑이 부재된, 둘 다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이 함께 있을 때면 그런 공백이 사라지고 사랑이 생겨나게 되지요. 서로를 의지합니다. 언젠가는 이브라힘 할아버지가 왔다는 황금 초승달의 나라 (터키)에 가보고 싶습니다.

모세의 아버지가 무책임하게도 회사에서 잘렸다는 이유로 마르세이유의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을때는 무척 놀랐습니다. 게다가 찾아온 엄마라는 사람의 태도도 말이지요. 모세는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 했었지만, 막상 어머니가 나타나자 그녀를 밀어냅니다. 애증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젠 자신에게는 어머니의 품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젠 이브라힘 할아버지가 자신의 부모를 대신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모세와 이브라힘 할아버지는 황금초승달의 나라로 함께 떠납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다가 모든 이야기를 해 버릴 것 같네요.

이상합니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인데 왜 눈물이 날까요.

책의 마지막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야기는 유쾌하고 코믹합니다. 마음의 공허함을 지닌 두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즐겁습니다.

살아있는 육신은 죽이고,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는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은 오마샤리프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2003년 베니스 영화제 초대작으로 소개되었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