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이와이 슌지 지음, 강민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기묘한 뱀파이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평소에 상상하던 그런... 창백한 피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고, 어둠을 사랑하며 어딘가 모르게 섹시한.. 아름다움과 고독함을 동시에 갖춘 그런 뱀파이어가 아닌, 우리 주변에도 있음직한 그런 뱀파이어였습니다.

지난번 <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헤마토필리에라는 것을 언급했었습니다. 피에 대한 갈망과 사랑이죠. 우리 말로 하자면 혈액기호증일까요. 이 책의 주인공인 사이먼에게는 그런 증상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뱀파이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목덜미를 물어뜯어 흡혈하지는 않습니다. 혈액을 튜브로 채취해서 상대방이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해주는 그런 정중한 방법으로 흡혈합니다. 시신은 냉동고에 보관하고요.

리스트컷 증후군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피를 보며 살아있다는 것 느끼곤 한다고 하지요. 그러니 그들이 피를 흘리는 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일겁니다. 사이먼의 경우 타인의 피를 보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동성연애자이지만, 자신을 낳은 어머니는 육아에도, 삶에도 별로 의욕적이지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너는 태아때 이미 죽어있었어."라는 말을 태연히 할정도로요. 사이먼은 어디서도 자신의 존엄과 존재를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숨쉬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자신이 살아있는 것일까 의심을 하지요. 그러다가 이웃소녀 루카의 사고사때 충동적으로 그 아이가 흘린 피를 마시게 되고, 성경의 한 구절인 "피는 생명인즉."이란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루카의 생명을 몸속에 받아들여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춘기때는 헬렌의 생리혈냄새에 흥분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혈액이란 생명이며 또한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의 연장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이런 사이먼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됩니다. 사이먼은 생물선생님이 되지요.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더욱 삶을 갈구하게 됩니다. <박쥐>에서의 송강호처럼 병원에서 혈액을 취할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는 자살 사이트에 가입하고, 자살하려는 여자의 혈액을 취합니다.

"죽을 거라면, 당신의 피를 주지 않겠어?"

처음에는 역겨웠습니다. 헤마토필리에는 아무래도 적응하기 어려운 코드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읽다보면 사이먼이라는 남자의 최초의 고독이 다가와 안타깝께 여겨졌습니다. 만일 그가 애초에 자신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도록 양육되었다면, 저런 삶을 살았을까요. 그의 손에 의해 죽은 여자들은 그를 원망하지 않고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서 생명으로서 살아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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